미국의 2차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챨스 피니의 “죽을 만큼 거룩하라”는 피니의 “완전성화관”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완전 성화관이란 웨슬리로부터 시작된 성화관으로, 장로교에서는 죤 머레이가 주장한 ‘결정적 성화관’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성화관으로 볼 수 있다. 즉 장로교의 ‘점진적 성화관’과 대립되는 주장이다. 예수를 믿고 나서 아주 급격한 영적인 변화(성화)를 겪는 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어거스틴이나 웨슬리의 회심을 통해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중생하면, 거룩을 추구하며, 죄와 단절하는 급격한 성화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 보편적으로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평생에 걸쳐 서서히 성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진적 성화관”을 주장한다.
이 책에서 피니는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완전성화관”이 옳음을 주장한다. 먼저 완전성화라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그러한 성화관은 아니라고 말한다. 완전성화라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연약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즉, 완전성화라고 해서 완전히 죄를 짓지 않는 다는 의미의 ‘완전성화’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주님께로 돌이키며 죄를 짓지 않으려고 힘쓰고,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진다는 입장에서의 ‘전적인 성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온전한 성화”라고 번역했는데, 참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피니는 바울의 예를 들어 바울도 전적인 성화를 경험했음을 많은 서신서의 증거들을 제시하며 설명한다. 그리고, 완전성화는 성경에서 약속되어진 것이며, 인간은 반드시 온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 있는지를 성경의 예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나의 힘과 능력으로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전한 성화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장로교인이기 때문에, “점진적 성화관”을 더 신뢰하지만, 그러나 피니의 완전성화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여진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는 ‘완전성화“의 요소와 ”점진적 성화“의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여하튼 부흥운동의 선두주자였던 챨스 피니의 ”죽을 만큼 거룩하라“를 통해 메마른 나의 영성과 심령에 풍성한 은혜의 단비를 맞은 것 같아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