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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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16회 사계절 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서, 아마 주인공 '정수지'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청각장애인으로서 느끼는 상황 묘사가 사실적이다. 물론 '작가의 말' 부분을 읽어 보면 '허구'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자전적 소설은 아닌 것도 같고.

표지는 주인공 수지와 같은 학교 친구인 한민과 그의 눈이 되어주는 맹인 안내견 마르첼로가 나란히 '산책을 듣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인 '침묵을 듣는 시간'에서 수지, 한민 두 청년이 개발한 사업 아이템 명칭이 바로 <산책을 듣는 시간>이다. 산책 신청자가 눈을 감은 한민을 안내하면서 산책을 하고 보고 느낀 것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사업의 골자라고.


 

총 179면 분량의 청소년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4년째 수정 중이라는 작가의 부연이 없었더라도 이 원고는 내용만 보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얼마나 정성들여 썼는지 느낄 수 있다. 퇴고를 4년이나 한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늘 글쓰기하면서 퇴고에 덜 정성을 들이는 나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고 새삼 퇴고의 중요성을 새기게 되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는 없었고, 자유로우신 영혼의 할머니와 자녀의 양육보다 자아실현이 중요한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으로 알고 있었다가. 고등학교 때 인공와우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수술 담당 의사로부터 "10개월 무렵에 독감에 걸려서 입원한 적이 있고, 농인으로 확진받은 것은 24개월 무렵이라고 나오는데요. 맞지요?"라는 그간 왜 자기에게 가족들이 장애있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행복한 분위기를 연출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동시에 엄마 마저 자기를 속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는데...

"내가 원망하는 것은 어른들의 잘못된 판단과 대처가 아니라 원망받을까 봐 평생에 걸쳐 해 온 거짓말이다. 언제나 진실이 낫다. 설령 그것이 아픈 진실이라도." (본문 p.67 참조)라고 하며, 진실이 미덕임을 강조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영화 속 음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꿈으로 실현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른 엄마와 마지막 남은 자신의 보호자 역할을 할 고모마저 자신을 혼자 남겨두고 출국하자, 철저하게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다. 이제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친구 한민뿐이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 흔한 속담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까지 "타인을 혹은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시간을 내어 다가가는 것. 그렇게 한 걸음 다가서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마법처럼 일어나게 됩니다. 저는 그 마법을 믿습니다. 마법의 힘으로 다양성이 포용되고, 존종받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연대의 힘'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성인이지만 청소년의 시선과 입을 빌어 전해 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함께'의 가치를 믿는 사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책 제목처럼, 책 속 두 주인공 수지와 한민이 되어 두 눈을 감고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자연의 소리, 사물의 소리,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단순히 현상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본 서평은 사계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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