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화는 밤새도록 끝이 없지 - 두 젊은 창작가의 삶과 예술적 영감에 관하여
허휘수.서솔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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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도 나처럼 손이 큰 사람은 기어이 한 손에 들어오는 다이어리 사이즈의 책이다. 포켓북이라 하기에는 가로 길이가 조금 큰.


대학에서는 나노물리학, 대학원에서는 프랑스 문화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허휘수 작가는 대학 동아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여 현재는 안무가로 활동중이란다. 아무리 대학 전공따라 밥벌이를 하는 세상은 아니라지만, 물리학도의 댄서로서의 삶이라니, 독특한 이력이다.

서솔 작가는 화가, 피아니스트, 외교관, 사진작가... 학창시절 매년 다른 장래 희망을 써내다가 대학에서는 영화 촬영을 써내다가 대학에서는 영화 촬영을 전공했다. 문화 관련 대학원은 한 학기 만에 중퇴했고, 비디오 아트에 매료되어 공연 영상을 만들거나 디자인 작품을 만들어 왔다고.

이 두 젊은 작가가 각자의 예술과 삶에 대해 나눈 진지한 대화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인생철학을 읽을 수 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예술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이어진다. 편지와 대화, 인터뷰의 형식으로.

'부록편'에서는 '우리도 함께 대화해요'라고 하여 독자에게도 생각을 써 본 공간과 시간을 남겨두었다. 예를 들어, "현재 당신의 자유로운 창작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는 무엇인가요?"처럼.

1장, 이토록 아름다운 불시착

- 두 작가는 서로 자신이 본격적인 예술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계기와 예술의 신성시를 경계해야함을 이야기한다.

예술에 대한 짝사랑으로 발을 들인 예체능 학과의 '신입생 길들이기'에 관한 군기 문화를 비판한다. 서솔 작가는 '공동연출자' 제안에 속아 헐값에 3D그래픽 작업을 해주었음에도 영화제에 초청은 커녕 영화의 완성본조차 구경 못했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열정 페이를 강요받는 무명의 서러운 현실을 고발한다. 아울러 "예술은 예술일 뿐이야. 나도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 예술이라는 존재를 너무 신성시하는 순간 예술의 주체인 인간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본문 p.31)라고 하여 예술의 신성시하는 문화를 경계한다.


2장, 그래서 예술이 뭔데?

- 서솔 작가가 허휘수 작가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인 것 같아. 그건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테니 예술에도 더 진중하게 다가갈 수 있겠지."라고 하여 진정한 예술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이에 허휘수 작가도 "진짜 인간적인 예술, 인간이 하는 예술. 예술가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앞으로는 의사소통할 줄 아는 능력과 삶아서 개인의 맥락을 가지는 데에 있을 거야."

(본문 p.115)라고 맞장구를 친다.

3장, 내가 딛고 선 여기가 바로 예술

- 이번 장은 두 젊은 작가가 서로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묻고 답한다. '예술적 영감'과 관련하여, 허휘수 작가는 "모든 예술가가 그렇지 않을까? 어떤 영감을 계속 외부에서 받기가 쉽지 않아. 외부적인 영감이 당연히 있지만 지속성을 가지려면 내부에서 얻어야 한다고. 외부에서 얻는 영감을 어떻게 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겠어? 영감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가장 강력한 주제는 '나'야. 나의 춤,글,창작은 나에게서 나와."(본문 p.162)라고 소신을 밝힌다.

서솔 작가도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영감 삼아 "창작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수단이이에요."(본문 p.186)라고 창작이 곧 자신의 삶의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자본주의 특성상 돈이 있어야 예술도 할 수 있는 현실적 고민을 토로하기도 한다.

'마치며' 부분에서 두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애정어린 말들이 젊은 예술인들의 진지한 삶의 태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결핍은 매력을 만들죠. 어설픈 당신은 참 매력 있습니다. 너무 어른스럽지 마세요. 나이가 들었다고 겸언쩍어하지도 말고요. 당신은 어린 시절에 필요 이상으로 성숙했습니다. 어른이 되려면 채워야 하는 '어리광지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어리광지수는 아직 반도 안 찼어요. 조금 더 노력하여 철이 없길 바랍니다. 당신을 가장 어리고 순수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세요. 성숙한 일처리와 어른스러운 처세는 잘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를 보호할 만합니다."(본문 pp.252-253)이 허휘수 작가의 말은, 일찍 철이 들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해주는 말인 것 같았다. 아마 자신의 나이에 맞는 삶의 무게만 확실히 책임질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너무 앞서가지도 뒤쳐지지도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

서솔 작가는 오프라인에서 팬들에게 받은 각양각색의 손편지를 받은 감동에 대해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종이로 된 편지에는 편지지를 심사숙고해서 고르고, 글씨가 잘 쓰일 만한 펜을 고른 뒤 자리에 앉아 할 말을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백스페이스가 없는 세상에서 오타를 내지 않도록 신중히 펜을 잡고 있는 순간이 모여 한 장의 편지가 완성됩니다."(본문 pp.256-257)라고.

두 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정의와 예술가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다른 듯 닮은 소신을 지니고 있다. 허휘수 작가는 춤으로, 서솔 작가는 글쓰기와 영상 제작으로 예술을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의 그럴싸한 작업실에 대한 로망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예술과 '돈'의 필요충분조건임을 40대인 나도 적극 공감했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려다보니 '나도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벌이 구조인 우리 가계 형편상 언감생심 가당치도 않다.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젊은 창작 예술인들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예술을 추구하기만은 힘든 현실이므로 경제적 수익 창출도 힘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삶에서 자신의 역사와 연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자!

본 서평은 상상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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