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곡한 말 늘어놓는 이 만나거나
빼곡한 글자가 적힌 책을 보면
쉬 피곤하거나 질리는 이치와 같을 터
​
바람이 지나갈 자리는
​
사람들과 함께 있든
혼자 있든
항상
필요한 자리입니다.

늘 지키고자 하는 태도가 있다. 친할수록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여자들끼리 친해지면 유달리 ‘언니, 동생‘하며 길을 갈 때도 팔짱을 끼고 딱 붙어 걷는 등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에는 그런 문화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정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음은 내주어도 호칭부터 만남까지 적당한 선을 지키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을 넘어서면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이다
​
어린 시절부터 외국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타인과의 관계에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바람이 지나갈 자리‘ 정도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듣자마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꼬집은 말이라며 무릎을 탁 쳤다
​
너무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다 중심을 잃으면 관계도 쉽게 어그러질뿐더러 상처 받기 십상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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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주의력
풍부한 상상력
​
미치지 않고서야
취하지 않고서야
연출해내지 않고서야
​
즐길 수 없는 법.
​
인생 또한 즐겨야
삶이 된다.
​
인생 또한 미쳐야
작품이 된다.

영화는 언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산문보다 행간에서 다양하게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나 하이쿠와 닮았다.
영화를 즐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력이나 청력이라기보다 오히려 
예민한 주의력과 풍부한 상상력이다.
깊은 맛이 있는 뛰어난 영화일수록
주의력과 상상력을 능란하게 사용하면 
볼 만한 장면이 덩굴에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줄줄이 늘어난다.
제작자에게는 그들의 지각을 최대한 
자극할 만한, 하나의 작품으로서 
독립된 매력을 발휘하는 
가이던스를 만들 책임이 있다.
​
만약 거기까지 연출이 미치지 않는다면 
역시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느낌도 든다.
미치지 않는 것을 강제로 보게 되어서야 
역시 핸디캡이 극복되지 않는다.
​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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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오늘 일어날 모든 일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감사해할까

작가가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안다면, 그 글은 진부해지거나 정신분석학 따위에 빠져들 위험이 아주 큽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해서 앞이 안 보인다는 듯이 더듬거리면 길을 찾아간다면, 뒤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길을 직접 만들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막스 피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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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나머지
감격에 겨워
만세를 외치는 일
​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만들 이유라는 건
충분히 있습니다

수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
인생의 다양한 장면에서 
만세를 부를 만한 
만남이 생기지만
​
그중 상당수는 
그때뿐인 만세다
​
기쁜 나머지 감격에 겨워 
만세를 외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
이 적은 행운을
나는 지금까지 
두 번 만났었다.
​
이 ‘두 번‘이 나와 여동생이 
태어난 날이다
​
내가 태어난 날. 오사카에도 
눈이 내렸다고 한다
​
이른 아침 인근 전화 부스에서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딸의 탄생을알았던 아빠
​
이곳에서 "만세!"를 
외쳤던 모양이다.
​
집에 전화가 없었나
​
나는 이런 쪽으로
흥미가 솟는다
​
더욱더 놀랐던 부분은
다음의 한 줄이었다.
​
첫 대면, 코가 높은 아이구나
이것이 첫인상이었다
​
아버지
나중에 깨달았으리라 생각하지만
​
나는 코가 낮다.
딸바보네.
​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첫대면에서 그렇게
느껴준 것에
​
어째서인지
눈물이 쏟아졌다. 142.p
​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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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영 <아무튼 산>중에서
​
오르고
내리고
​
가다보면
오다보면
​
여행은
​
여기서
행복하기
였음에
​
감사할 날들도
있겠지

산은 다른 산을 기대하게 했다.
모퉁이를 돌면, 정상에 서면, 다른 산이 보였다
​
저 산은 어디일까? 저 산의 이름은 뭘까? 저 산에 가고 싶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들을 보면 가슴이 벅찼다. 그건 지금 이 순간 목표에 도달했다는 기쁨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
다음이 있다는 기쁨, 다른 산이 있다는 기쁨, 산이 있는 한 언제든 오를 수 있다는 기쁨, 문득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작은 점처럼 느껴졌다. 이 점을 계속해서 연결하고 싶었다. 더 많은 산에 오르고 싶었다. 더 높은 곳에 서고 싶었다. 30.p
​
내 의지를 따라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는 자신감, 어쩌면 산을 핑계로 일상으로부터 도망쳤다는 자괴감, 이 두 가지 극을 달리는 감정을 오고 가며 괴로울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건 자기 자신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
어쩌면 나처럼 무언가를 포가하고 왔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느리고 더뎌도 정확하고 분명한 보폭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무너졌던 나의 자존도,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도 다시 차오르는 듯 했다. 37.p
​
애쓰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삶의 어느 부분과, 일상의 어느 시간과, 인생의 어느 구간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산에서는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일들은 그런 일들이었다
​
그건 세상 속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호흡과 날 것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직 산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열정과 애정이 계속해서 이 세상에 전해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 열정과 애정을 전하고 싶었다. 51.p
​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계획 이상의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모든 일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지만 내 예측보다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성취와 성공보다 더 멋지고 감동적인 좌절과 실패가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산에서 배웠다.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 59
​
그래서 산에서 답을 찾느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산에서 얻은 어떤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서 그대로 덮어둔 경우도 많다
​
뭉쳐 있던 생각을 꺼내고 펼치는 것만으로 시원하고 후련한 감정이 든다면 그날의 산행은 성공이라 여긴다. 내 안의 나를 만난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테니까. 112
​
산이 있어서 내가 가진 걸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이 있어서 삶의 어느 시기보다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을 멈출 수 있었던 곳도 산이었다
​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달렸던 곳도 산이었다.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달렸던 곳도 산이었다. 산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산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에 이어 산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들을 통과했다.
산에서 나는 기뻐했고 슬퍼했다. 사랑했고 미워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내 것이었다. 고요하게 겸허하게 오르는 산이 좋다. 들뜬 나를 차갑게 하는 그 산이 좋다
​
하지만 치열하게 먕렬하게 오르는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그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두 개의 산을 오고 가며 나는 이제 서서히 나에게 편안한 페이스를 찾아가는 것 같다. 135
​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지금 내가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을 꾸준히 오르고 오르는 것이 바로 산 사람으로 사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시간이 흘러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 주겠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그날까지 묵묵히 내 앞의 산을, 내 몫의 삶을 오르고 또 올라야겠다. 그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내리막도 만나겠지. 147
​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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