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언제나 말을 걸어왔지만
정작 알아듣지 못한건 나였다.

이것 밖에 주어지지 않은 건
이것 밖에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이제서야 납득이 간다.

저것이 주어지길 바란다면
저것이 가리키는 이유를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서야 납득이 된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것을 말없이 따라가라. 그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신이 배치해 둔 표적들에 귀를 기울이라. 
그러면 길을 발견할 것이다. 
나무에 새겨진 표시를 따라 방향을 정하듯, 
불분명하게 뒤엉킨 삶의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일상 속 어디나 타인과의 대화나 꿈 속에도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작은 표지판들이 있다. 
모두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찾는 것이 사실은 우리를 찾고 있다.
표식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이미 길들을 지나쳐 왔다면 
잠시 한적한 숲의 어느 나무 아래서 눈을 감고 뒤돌아보라. 당신이 여행한 어느 골목, 어느 지점에선가 당신의 시선을 붙잡으려고 기다리던 어떤 표식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켰을지도 모를 
무심코 나눈 대화 속 한 단어, 
우연히 넘긴 책의 한 구절이.
삶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 왔을 때가. 2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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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본질은
시간을 소진한다는 것에 있다.
누구나 잘 알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몰입에 대한 예찬은 좋으나
과찬은 사양한다

쫓기는 사슴의 몰입과 
쫓는 사자의 몰입은 분명히 다르다. 
열애에 빠진 사람이 하는 몰입과
부도에 쫓기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의 몰입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다.
전자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아서 
미친듯이 돌진하는 능동적인 몰입이며
후자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나는 
위기 상황에서 일어나는 수동적인 
몰입이다.
통상 취미 활동에서는 주로 능동적인 
몰입을 하지만 직장에서 직무를 수행할 
때는 주로 위기 상황에 의한 수동적인 
몰입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시험 공부를 하면서 경험하는 
몰입도 대표적인 수동적 몰입이다. 191.p

20분 생각하기를 규칙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이다. 
보통 출퇴근할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거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그저 머릿속에 생각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따라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이 시간에 자신이 현재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 20분간 골똘하게 생각하면 
출퇴근 시간이 소모되는 시간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으로 바뀌게 된다.
출퇴근 시간마다 매일 20분씩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규칙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기에도 매우 좋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20분간 생각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이 정도 집중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 다음은 난이도가 더 높은 문제를 가지고 
조금 더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는 훈련을 한다.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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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순간순간 성장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
생의 목적이
삶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임을
깨닫고 나면
세상을 들여다보는 시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마존에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황농문 교수가 ‘몰입‘에서 이야기한 대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라는 자기 최면을 걸어 동기 부여를 높여야 했다.
 하지만 진정한동기 부여는 정해진 틀 안에서 누군가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찾을 때 가장 강해진다. 회사의 틀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깨버리고 회사의 일 또한 더 큰 목적을 향한 숙달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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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을 써라.
강렬하게 독서해라.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보자.

레이 브래드버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있는 그림일기중독자입니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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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을 읽든
한 페이지를 읽든
한 장을 읽든

딱 그만큼의 이로움이 있다
딱 그만큼의 세계가 확장된다

읽지 않았더라면
이 서툰 글조차
쓸 일 없었을테니깐

앞으로 나는 많은 책들을 사서 서가를 채우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이 서가의 책들을 느릿느릿 읽어나갈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이렇게 썼다. "책읽기는 밥을 구하는 노동과 관련이 있으며, 고루함과 독단에서 벗어나는 영혼을 위한 장엄미사, 번뇌를 끊고 열반 정적에 나아가기 위한 참선이기도 하다. 먼저 책읽기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지적인 흥분과 열락감을 준다. 책 읽기가 즐겁지 않다면, 기분을 화창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책읽기를 그만둘 것이다"
장석주, 비주류 본능

장엄미사, 참선 따위의 말들을 굳이 골라 쓴 걸 보면, 이 무렵 나는 책 읽기에 어떤 종교적 신성성을 느꼈나 보다.

저 유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른 오늘날까지 내 무의식에 꿈틀거리는 죽음에의 두려움이 번쩍 하고 떠오른다. 책읽기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의 욕망이 추동한 것은 아닐까? 유년기에 나는 이미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촉발된 물음의 연쇄 속에 있었다.
생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왜 나는 저기가 아니고 지금 여기에 있는가? 우주는 지적설계로 나온 것인가? 우주는 오메가 순간, 즉 거대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가? 우주 종말 뒤에 나는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 있을까?

무로 돌아간다면 무란 무엇인가? 그 물음의 연쇄들이 거센 힘으로 등을 떠밀어 책을 향하게 했다. 실제로 나는 여러 도서관과 무수히 많은 서점들을 떠돌며 책들을 섭렵했다. 일찍이 책이 삶의 시간들을 겹으로 살게 하고, 삶의 시간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이 조숙과 영악함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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