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이해인 수녀님
류시화 작가님
세 사람이
모닥불 피워두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
문득 보고 싶어진 즈음.
그림일기로라도
세 분을
모셔야겠습니다.

수도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림자 같은 것이겠지요.
고독하지 않고는 주님 앞에 마주 설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단절된 상태에서 오는 고독 쯤은 세속에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수도자의 고독은 단절에서가 아니라 우주의 바닥 같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 아닐지요.
말하자면 절대적인 있음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배부른 상태에서는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린 자만이 고독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독을 배웁시다.
법정스님의 편지. 1978년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라"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모든 이의 모든 것에 다 열려 있지만 내가 관계 안에 빠져 있으면 안되는 거예요.
그러러면 스스로 고독을 실습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수도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절대적인 있음 안에 스스로 서 있는 상태입니다. 충만함을 이루고 있죠.
곁에 아무도 없다고 서운해 하는 모습이 외로움이라면 고독은 침묵 속에서 더 근원적인 실체를 헤아리는 고차원적인 홀로 있음인 것 같습니다.
고독은 철학적인 추구 외로움은 유아적인 욕망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Man is an aspirayion to God.
인간이란 신을 향한 하나의 갈망이다.
우리는 그렇게 죽을 때까지 뭔가를 그리워하는거죠.
고독은 그리움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님이 신앙적인 개념 안에서 하느님은 절대적인 있음이라고 풀이하셨어요.
온전함이죠. 그래서 만질 수 없지만 그 뜻을 좇는 겁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고 달빛처럼 스며드는 꽉 찬 빛의 느낌.
내 존재 안에 달빛처럼 스며들어서 내 마음이 친척들을 대하듯
세상 모든 사람에게 열리는 시간을 저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 싶어요.
제가 40여 년 동안 쓴 시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인이 언어로 표현한 것알 뿐이에요.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용맹 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다."
성철스님 하신 말씀.
고통은 피하고 싶기는 하지만 반드시 행복의 반대인 것 같지는 않아요.
잘 지내고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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