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을 읽든
한 페이지를 읽든
한 장을 읽든

딱 그만큼의 이로움이 있다
딱 그만큼의 세계가 확장된다

읽지 않았더라면
이 서툰 글조차
쓸 일 없었을테니깐

앞으로 나는 많은 책들을 사서 서가를 채우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이 서가의 책들을 느릿느릿 읽어나갈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나는 이렇게 썼다. "책읽기는 밥을 구하는 노동과 관련이 있으며, 고루함과 독단에서 벗어나는 영혼을 위한 장엄미사, 번뇌를 끊고 열반 정적에 나아가기 위한 참선이기도 하다. 먼저 책읽기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지적인 흥분과 열락감을 준다. 책 읽기가 즐겁지 않다면, 기분을 화창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책읽기를 그만둘 것이다"
장석주, 비주류 본능

장엄미사, 참선 따위의 말들을 굳이 골라 쓴 걸 보면, 이 무렵 나는 책 읽기에 어떤 종교적 신성성을 느꼈나 보다.

저 유년기에서 장년기에 이른 오늘날까지 내 무의식에 꿈틀거리는 죽음에의 두려움이 번쩍 하고 떠오른다. 책읽기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의 욕망이 추동한 것은 아닐까? 유년기에 나는 이미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촉발된 물음의 연쇄 속에 있었다.
생명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왜 나는 저기가 아니고 지금 여기에 있는가? 우주는 지적설계로 나온 것인가? 우주는 오메가 순간, 즉 거대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가? 우주 종말 뒤에 나는 여기가 아니라 어디에 있을까?

무로 돌아간다면 무란 무엇인가? 그 물음의 연쇄들이 거센 힘으로 등을 떠밀어 책을 향하게 했다. 실제로 나는 여러 도서관과 무수히 많은 서점들을 떠돌며 책들을 섭렵했다. 일찍이 책이 삶의 시간들을 겹으로 살게 하고, 삶의 시간을 연장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이 조숙과 영악함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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