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휴가 데리고 갈
여름 밤 맥주랑 마주 앉을
여름책으로 임명합니다

여름에는 모두가 맥주로 하나가 된다. 나와 지인 대부분은 맥주 마시려고 운동을 가거나 맥주 마시려고 운동 갈 계획을 취소한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갈 때 쯤이면 거짓말처럼 편의점 출입 빈도가 줄어든다. 재활용 쓰레기통에도 맥주 캔이 천천히 쌓인다

금방 차지 않는 쓰레기통을 마주할 때나
자주 지나치게 되는 편의점을 볼 때마다

아, 이제 여름이 끝났구나

싶지만 여름은 다시 올 거라는 걸 안다. 그 때가 되면 분명 출근 도장을 찍듯 열심히 맥주를 골라 나르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들락거릴 나를 알고 있다. 간에도 휴가가 필요하니까, 내 간은 휴가를 겨울에 간다. 39.p

잘한 일에 대한 보상은
스스로가 주는 것이다

보너스나 인센티브는 커녕
그 흔한 연봉조차 없는 나같은 프리랜서에겐 작지만 즉각적인 보상이 더욱 절실하다.
그래야 더 열심히 한다.
그래야 더 잘 얻어 먹을 수 있다
나한테. 61.p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앞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92.p

혼자 여행할 때는 가방에 늘 책을 한 권씩 넣어 다니면서 시간에 공백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읽는다.
책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시간이 준 느낌만큼은 선명하다. 존재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누군가가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느낌, 내 기분을 정확히 아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있는 느낌, 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 그 느낌을 정확하게 묘사한 구절을 만났다.

문고본은 여행의 필수품이다. 특히 나는 대체로 혼자 여행을 떠나 시간이 넘친다. 그러니 가져간 책은 마치 함께 여행하는 친구 같은 존재다. 그 책이 나에게(혹은 여행하는 장소에) 맞지 않으면 약간 비참한 기분이 든다. 방대한 시간, 나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불안과 고독이 뒤섞인 기분을 계속 질질 끌고 가게 된다.

가쿠타 미쓰요 보통의 책읽기 엑스북스 에서. 99.p

올여름에는 책 한 권 들고 언제든 혼술하러 갈 수 있는 동네 술집을 찾아볼 거다. 가서 나중에는 기억도 안 날 책을 열심히 읽고, 틈틈이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일 생각도 하면서 나 자신과 독대 좀 해야겠다. 여름은 그러기 위한 계절이니까

나른하고 게으를수록
좋은 계절이니까

그때 곁에 책이라는 안주가 있다면, 그 시간은 더욱 기꺼울 거다. 101.p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손 닿는 것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싸늘한 마음은 뜨거운 계절조차 차갑게 만들어버린다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름을 완성하는 건 계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그 어디서든 여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거다. 116.p

나에게는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부터가 여름이다

짧기만 한 계절을 길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늦봄부터를 여름의 도입으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은 덩굴장미가 피는 순간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올해도 전국의 덩굴장미들이 건강히 피어주기를 바라는 일, 그게 바로 내 여름의 시작이다.

그러다 9월이 오면 허전한 마음에 작은 한숨을 쉬면서도 얼른 내년 여름에 또 다른 덩굴장미를 만날 날을 기대하는 일, 그게 바로 내 가을의 시작이다. 130.p

지극히 사사로운 여름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별개 아니다. 여름을 즐기는 데 필요한 건 조건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 순수한 기대라는 것

내 흑역사들이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게 될지 몰라도 이렇게소심하게나마 여름을 아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근사한 추억 같은 거 없어도 여름을 사랑할 수 있다. 169.p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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