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중력에 이끌려
사라질 그날만을 기다리며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이 하루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 속
오감에 이끌린 것들이
진짜라 믿고 진짜라 여기고
하루하루 살아가던 것이

오히려
내 생을 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거대한 알 속에서
안주하게끔
제약하고 있었음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있음을

글과 책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깨달을 수 있었으랴.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모피어스가 내민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나에게도 내민다면

이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나는 어떤 알약을
선택할 하루인가

샤 나그바 임무루 이쉬디 마티

나라의 기초인 심연을 본 자

길가메시 서사시 제 1토판 1행
158.p

새끼 거북이들의 여정은 어미 거북이로부터 시작된다. 어미 거북이가 바다를 횡단해 자신들의 고향인 해안까지 헤엄쳐 오는 과정은 매순간이 죽음과의 사투다.
바다의 파도가 가장 높은 날, 그리고 여름 중 가장 뜨거운 날, 어미 거북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174.p

알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깨고 나와야 할 경계다. 신비롭게도 새끼거북이는 알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무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카벙클이라고 불리는 임시 치아가 그것이다. 새끼는 무작정 알 안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금방 썩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카벙클을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의 내벽을 깨지 못한다면 새끼 거북이는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며 정의하는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176.p

단단한 알을 깨느라 카벙클이 온통 부서지고 피가 난 새끼 거북이를 맞이하는 것은 아빠 거북이도 엄마 거북이도 아니다. 바로 어미 거북이가 알을 낳고 덮어놓은 30센티미터 두꼐의 모래다.
새끼 거북이들이 이 견고한 모래성을 뚫고 나오는 데는 자그마치 3일에서 7일의 시간이 걸린다. 이 때 새끼 거북이의 몸무게는 알을 꺠고 나왔을 때에 비해 약 30퍼센트 정도 줄어 있다.178.p
우여곡절 끝에 새끼 거북이들은 바다에 도착한다. 바다는 이들에게 천국인 동시에 지옥이다. 그들이 향해 가는 곳은 바다의 가장 밑바닥인 심연이다. 그곳에는 이들을 위협하는 큰 물고기들이 많지 않다. 뿐만 아니라 수압이 높아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등닥지와 배딱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새끼 거북이들은 자신들만의 인생 여정을 시작한다.

바다거북이의 생후 1년간의 바다 생활을 관찰한 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 기간은 실종의 기간으로 불린다. 이 1년을 홀로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비로소 바다 거북이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알로 인식하는 순간 입 안에서 카벙클이 돋아난다. 카벙클은 내가 갇혀 있는 이 세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도구이다. 이 카벙클로 우리는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 흉내와 부러움이라는 알을 꺠고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180-181.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