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사람 대신 책을 만나고 그 인연으로 또 그 힘든 청춘의 하루를 살았으리라 는
저자의 이야기가 오늘도 이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페이지를 펼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친구는 그러냐고 했지 그래도 그 친구는 집을 짓겠다고 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그 친구가 얄미웠지만 네가 참 얄밉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었어 결국 너는 방이 필요했던 거야 어차피 같이 살 사람은 많을테니 너는 성을 쌓고 싶었던 게지 나는 그런 집에 살고 싶지 않을 뿐이고 나는 그런 성을 불태워버리고 싶어하고 불안한 동거는 할 수는 없잖아 예쁘게 정성스럽게 지은 집을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때 불을 지를 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는 네 집을 지어라 네가 그런 성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솔직히 관심없어 어차피 그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도 네가 참 얄밉다는 생각이 드네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하긴 집을 짓고 밖에 나올 일이 별로 없겠네 담장은 자꾸 올라가도 너는 세상을 굽어보고 있을 테니까 담장 아래 깔린 게 혹시 나일지도 모르니 한 번쯤 굽어살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황지우.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1998년 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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