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모든 가능성과
모든 불가능성들이
공존하는 존재.
그 존재로
여기에 있다.

국어사전의 가장 좋은 점은 펼칠 때마다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사전 앞에선 고작 한 단어일 뿐이다. 글 쓸 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백지 앞에서는 늘 속수무책이다.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기쁘면서도 당황스럽다.
백지는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과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거라는 불가능성이 모두 담겨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에 발을 들인 후 손을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움찔움찔한다. 그래서인지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면 온몸이 기진맥진해지곤 한다.
가만히 앉아 글을 쓰기만 했는데도 에너지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요즘도 틈이 날 때마다 나는 국어사전을 펼쳐 든다. 어른이 된 뒤로 어릴 때만큼 두껍고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이 안에 분명 내다음 시를 불러일으킬 단어가 있을 것이다. 글쓰기든 인생이든, 나의 다음은 국어사전 속에 있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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