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보다 지우기.
쓰고 싶은 것보다
쓰지 말아야할 것.
알아차리는 게
더 힘든 법이다.

공책에 손으로 쓸 때는 단 한 번도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던 내가 컴퓨터로는 단숨에 열 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에는 글의 어느 부분이든 언제든지 깨끗하게 지울 수 있는 지우기 키가 있었다고 이미 말했다.
지우기 키의 사용을 통해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소설 창작의 더 깊은 본질은 쓰는 일이 아니라 지우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배웠던 것이다.
컴퓨터 이전의 작가들처럼 손으로 글을 쓰면서 그 사실을 익힐 수도 있었겠지만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나는 이 지우기 키 속에 아감벤이 말하는 하지 않을 수있는 능력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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