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중얼거림도
신형철의 읊조림도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억

보내는 편지

머지않아 날은
어두워질 것입니다

인적이 끊긴 길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은
지금껏 온 길을 다시 가야 할 길로 만드는 일이지만

오늘은 이곳에
가장자리가 헌 배낭을 내려둘 것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유난히 원색을 좋아해서

이른 저녁부터
집 안 선반마다 놓인 그릇들은
가난한 제 빛을 밝힐 것입니다

물론 그쯤 가면
당신이 있는 곳에도 밤이 오고

꼭 밤이 아니더라도
허기나 탄식이나 걱정처럼
이르게 맞이하는 일들 역시 많을 것입니다

조촐하게 시작된 박준의 시 쓰기가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가는 과정을 얼마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거기에 속한다. 이 예외적인 성공이 그의 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 일이 될까 염려되었다. 팔리는 책만 따라 읽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팔리는 책이라면 무조건 낮춰 보는 것 역시 경박한 일인데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 협량한 선입견 없이 박준의 시를 읽으면 그의 시가 갖춘 미덕이 눈에 더 넓게 들어올 것이다.

신형철 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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