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어진 생의 전쟁의 하루 마감하고
이 주어질 삶의 전쟁의 하루 시작하면서

개와 늑대의 시간을 넘어서
사각사각 거리며 다가오는
토요일의 밤.

적들의 노 젓는 소리 듣다.

난중알기의 메마른 문장 속에서는 춥고 배고파서 도망치는 부하들을 목베는 이순신의 마음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이순신의 바다는 인간세의 고해다. 그는 그 고해를 끝까지 건너갔다.

- 삼가 무찌르고 붙잡은 일을 보고합니다.

라는 첫 문장으로 대뜸 시작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 그의 무인적 에토스를 느낀다. 그는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부하들의 이름과 공적을 모조리 적어서 임금에게 보냈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기록에 남아 있다.

‘맞붙어 싸울 때 ‘관노비 기이, 관노비 난성, 토병 박고산, 격군 박궁산...들은 전사했고, 그 밖에 수많은 관노비, 사노비, 절에 딸린 노비, 내수사 노비, 어부, 격군, 토병 들은 부상당했는데, 이순신은 이들의 이름 석 자와 작은 전공까지 세세하게 적어서 임금에게 보냈다.

이순신은

- 이들의 처자식들에게는
구제를 위한 특전을 베풀어주소서.

라고 임금에게 청원했다.

그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천민‘들의 이름을 적어서 임금에게 보내고 원호를 요청했다. 군율을 어긴 자들을 가차없이 목 베고, 전사한 노비들의 이름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고 공로를 챙기는 그 양극단을 그는 하나의 마음에 품고 있었다.

노량은 그의 마지막 바다이다.
명량에서 노량으로 나아가는
정유년 겨울에 그의 일기는 때떄로

- 비와 눈이 내렸다. 서북풍이 불었다.
- 눈이 내렸다.
- 흐렸다 맑았다 뒤범벅이었다.

처럼 간단한 한 줄이다.
이 한 줄의 문장으로 전쟁의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는 눈보라 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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