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 170일간의 재판 기록으로 밝힌 10.26의 진실
안동일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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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2017.03.10, 지금은 전 대통령이 되어버린 박근혜의 탄핵이 가결되었다.  전국의 치킨가게는 손발이 바빠졌고, 학교의 학식이나 급식에는 잔치국수가 메뉴로 올라오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국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의 기쁨을 표출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누군가의 묘소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 소식이 1면을 장식한 신문과 꽃, 법전, 시바스리갈 술병이 놓여졌다. 그 묘는 과거 박정희의 독재를 죽음으로 멈춘, 김재규의 묘이다.


  고등학교 시절, 역사와 관련된 동아리에 참여했던터라 그가 박정희를 죽여 민주주의에 힘을 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은 알지 못했다. 정말 '결과'만을, 단편적인 것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에서는 10*26사태에 대한 사건의 전말과 재판과정, 그 후의 일들까지 '변호인'이라는 제 3자의 시선으로 소상히 밝히고 있다.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그 당시는 박정희가 이 나라에서 최고였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살해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김재규 본인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은 커녕, 이미 꺼져버린 촛불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임은 자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서 용기를 가지고 실행에 옮긴 것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 주위의 시선과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지켰다는 것 역시 존경할 만한 점이다. 사실 소신을 지킨다는 게 말이 쉬운 것 아닌가. 우리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옷 하나를 입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걱정하며 너무 화려하지는 않은가 하는 걱정을 하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씁쓸한 미소를 띠면서도 결국 다시 옷장에 옷을 걸어두게 되는 현실이다.


  책의 가장 앞 부분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면, 그는 결코 남들보다 우월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사진 속 그는 주위의 헌병들보다 훨씬 작은 신장을 가졌으며, 얼굴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햇빛에 그을리기도 했으며 주름이지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범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사람들도 하기 어려울 법한 일을 해내었다. 그 원동력은 그의 외면에서 찾을 수 없다. 담대한 기백,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이 모든 것은 그가 내면 깊은 곳에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영사의 또다른 책,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이 생각났다. 백충현과 김재규는 자신이 해야하는 일을 한 인물이다. 그 지향점과 방법은 '펜'과 '칼'과 같이 대립되는 것이나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해내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를 읽으면서도 똑같이 느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그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의 꽃은 뒤에 실려있는 <부록>이라고 생각한다. <부록>에는 실제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출했던 자료들이 실려있다.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 항소이유보충서(김재규), 상고이유서, 대법원 판결문 요지가 실려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김재규 본인의 항소이유보충서이다. 그는 자신이 박정희를 살해할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밝히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재판을 받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사람이라면 글 어느 구석에는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재규는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한다는 내용이 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형시키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살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형되었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 파장, 국민들의 혼란과 이를 틈탄 북한의 반응과 같은 것을 걱정하며 스스로 자결하게 해달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국가를 위했다.


  우리는 김재규의 일생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 다시는 박근혜와 같은 과거 유산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한 나라를 대표하도록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의 숭고한 넋을 기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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