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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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속의 약초처럼 귀한' 그, 전우익은 얼굴 가득하게 깊이 주름진 시간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처럼 하얗게 센 머리는 그의 소박한 성품을 보여준다. 가닥가닥 세어버린 눈썹은 왜소해보이나 강직한 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책 중간에 틈틈이 등장하는데, 편지글과 어우러져 직접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받는 이는 내가 아닌, '스님'인데 말이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의 얼굴의 주름처럼 생각을 깊이, 그리고 많이 하는 사람임이 느껴진다. 철학가의 느낌마저 드는 것 같다. 역시나, 그는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속세를 등지고 강호에서 삶을 이어가며 덜 먹고 덜 입는 그지만, 결국 속세에 대한 끝없는 상념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가 한 말처럼.



"물 이야기가 억세고 착한 사람 이야기로 흘렀습니다.

사람이다 보니 사람 문제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는 자연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속세의 깨달음으로 발현한다. 판에 모를 길러 던져 심는 '투묘'를 통해서 그는 노동이 놀이가 되었다고 했다. 심는 고역에서 해방되고, 수확량도 손이나 기계로 심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사회에서의 '노동'에 대해 논한다.


"사람은 노동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고역은 사람을 삐뚜러지고 잔인하게 만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노동의 고역에 오랫동안 시달려 온 사람들은 일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사무원, 공무원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무려 1990년대 초에 쓰여진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이 아닌, '고역'을 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그들의 감정과 경험, 사회로부터의 대우는 2017년,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의 노동자가 육체의 노동으로 한정된 것과 달리, 현재의 노동자는 사무 노동자, 육체 노동자 등으로 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노동자의 분화는 '육체 노동'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더욱 짙어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와 내 자식만은 일을 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극히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했다. 생활의 변화와 일의 변화의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일을 변화시키는 일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변화사켜야 결국 나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글 곳곳에서 불쑥불쑥 그 몸집을 드러낸다. 그의 흰 눈썹 몇 가닥처럼.


"제도나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뀐 토대 위에서 제도가 새로워지는 것이 진짜 발전이지요."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취업'에 대한 생각을.

  기업은 인재를 찾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고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독특한 사고가 이루어질까? 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본질적인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취준생들은 어떠한가. 기업의 구미를 당기게 하기 위해 진정한 '나'는 어느새 저 뒷편으로 제쳐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나 역시 '맛있는' 나를 기업에게 들이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향한 그 애정을 온전히 그들 앞에 내보여서는 안된다. 얼마나 슬프고 모순적인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원하는 곳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낭중지추'라 하였다. 과거에는, 아니 학창시절까지는 이것이 '특출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낭중지추'는 '특이한', '별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집단 속에서 튀는 것은 그 집단의 누구도 곱게 보지 않는다. 시기와 질투가 끈끈하게 얽혀든다. 사회에서 원만히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장점을 죽여야 하는 이 사회는 어디서부터 비틀린 것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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