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스푸가 들려주는 세 나라의 교류 이야기

#10 원조를 뛰어넘은 자기




도자기,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올라? 아마 고려청자가 아닐까?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문화유산이야.

세계 최초로 자기를 만든 나라는 중국이야. 그보다 500여 년 뒤부터 만들기 시작한 한국이 2위지. 일본은 한국보다 600여 년 뒤에 만들기 시작했고 말이야. 



송나라 자기를 뛰어넘은 고려청자


중국의 자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통일신라 말기의 일이야. 당시 중국의 선종 불교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어. 그전까지만 해도 불교는 경전의 연구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선종은 고요한 명상을 통해서 불교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종파였어. 그런데 명상을 하면 자주 졸음이 밀려왔겠지? 승려들은 맑은 정신으로 명상을 하기 위해 차를 즐겨 마셨단다.


그래서 중국의 선종 불교와 함께 차와 차를 마시는 그릇까지 통일신라에 들어왔어. 당시 승려들은 청자로 만든 그릇을 특히 좋아했지. 차의 은은한 색과 향을 가장 잘 살려 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승려들 사이에 유행하던 중국 청자는 점점 널리 퍼졌고, 통일신라의 높은 신분 사람들도 청자를 좋아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자기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한 건 고려 초기부터야. 당시 중국은 혼란한 시대를 거치고 있었기 때문에, 고려로 이주하는 도공들이 적지 않았어. 고려의 지배층은 이 도공들을 고용해서 자기 기술을 전수 받아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던 거야.


고려는 100여 년 동안 자기 생산 기술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나갔어. 그 결과 마침내 탄생한 것이 바로 고려청자란다. 고려청자의 수준은 중국 송나라에서도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어. 특히 고려 사람들의 상감청자는 중국 송나라에서도 감히 흉내 내지 못하는 자기였지.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은 이런 글을 남겼어.


“자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 사람들은 ‘비색’이라고 부른다. 최근 들어서 자기 제작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고 색깔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송나라의 자기도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자기 제작이 가장 활발했고 기술도 가장 뛰어난 시대였어. 그런 송나라의 자기가 고려청자보다 못하다고 기록한 걸 보면, 고려청자의 제작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분청사기와 성 하나를 바꾼 일본 성주


고려청자는 송나라 사람들도 놀라워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했지? 하지만 고려청자는 고려 말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도공들은 조선 초 무렵부터 ‘분청사기’라는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어. 조선 도공들은 옛날의 화려한 고려청자와 똑같은 자기를 다시 만들려고 했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 보아도 빛깔이 좋지 않았어. 그래서 좋지 않은 빛깔을 감추기 위해서 흰 흙을 하얗게 칠했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분청사기야. 분청사기는 고려청자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고요한 멋이 있어서 고려청자 못지않은 예술성을 지닌 자기란다.


분청사기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았어. 당시 일본 사람들은 차를 즐겨 마셨는데, 조선의 분청사기 찻잔은 고요함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의 취향에 잘 맞았던 거야. 일본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수입했지만, 원하는 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어. 그래서 분청사기는 일본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단다.


일본 사람들은 조선의 분청사기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지방 영주에게 상을 내릴 때 땅을 주는 대신 분청사기를 준 적도 있다고 해. 또 일본의 어느 지방 영주는 성 하나와 분청사기 찻잔 하나를 맞바꾸기도 했다는구나.


일본에서 분청사기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갔어. 그리고 조선의 다른 자기들도 인기를 끌게 되었지. 일본 사람들은 조선의 자기를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자기를 갖고 싶어졌어.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래, 자기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었지. 




조선 도공의 손으로 새롭게 태어난 일본 자기 


임진왜란 때의 일이야. 조선에 온 일본 장수 중에 ‘시마즈 요시히로’라는 영주가 있었어. 역시 다른 일본의 영주들처럼 조선의 자기를 무척 좋아했단다. 그래서 전쟁 후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선 도공들을 붙잡아 왔지. 그렇게 조선에서 붙잡아 온 도공들에게 가마를 만들 땅을 내어 주고, 자기를 만들게 했어.


조선 도공들은 고향이 그리웠지만 돌아갈 수 없었어. 조선 도공들은 당장 먹고살기 위해 자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단다. 조선 도공들은 고향에서 만든 것과 똑같은 자기를 만들고 싶었지만 일본의 흙은 조선과 달라서 조선 자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단다. 조선 도공들은 오랜 시간 동안 좋은 흙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좋은 흙을 찾아서 조선 자기와 비슷한 자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지. 이제 일본도 조선 도공의 노력으로 자기 생산 국가가 된 거야.


시마즈 요시히로는 조선 도공들이 만든 자기를 사랑했어. 그래서 일본 곳곳에 자기를 전파했지. 막부의 쇼군에게 바치기도 하고, 다른 지방 영주들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어.


조선 도공들은 대를 이어 자기를 생산했는데, 일본 사람들의 수요에 맞게 만들다 보니, 조선 자기와는 느낌이 다른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게 되었어.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사쓰마 자기’란다.


임진왜란 때 끌려가 일본 사쓰마 지역에 정착한 심수관 가문이 만든 자기야.

조선의 자기에 새로운 기술을 더해 많은 사랑을 받았지. 

12대에 이르러 일본 왕실의 그릇을 생산하는 자격을 얻었고, 

사쓰마 자기라는 이름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었어.




최고의 자기는 어느 나라가?


한국은 중국에게, 일본은 한국에게 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웠어. 그러나 자기의 품질과 예술적인 수준은 결코 가르쳐 준 나라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지? 한국은 세계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고려청자의 비색을 창조했고, 일본은 새로운 자기를 창조하여 세계적인 자기 생산국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

도자기 :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부르는 말. 도기는 1000도 정도의 불에 도토(진흙)을 구워서 만든 것이고, 자기는 1300도 이상의 불에 자토를 구워 만든 것. 빗살무늬 토기나 옹기그릇은 도기에 속하고, 앞에서 말한 고려청자나 분청사기, 백자는 자기에 속한다. 도기는 먼 옛날부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자기는 자토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온도를 높이는 기술의 개발이 어려워 쉽게 만들기 어려웠다.

상감청자 : 표면에 검정색이나 흰색 흙, 금, 은 등을 박아 무늬를 내는 기술로 만든 청자.



이 연재물은 책과함께어린이에서 출간될 어린이책의 내용 일부분을 미리 보여 드리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연재 정보와 필자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연재를 시작하며'를 봐주세요.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원하시는 분은 곤란합니다. 



★깜짝 퀴즈★

중국에게서 자기 생산 기술을 전수 받은 고려가 100여 년 동안 기술을 발전시켜 만들어낸 자기로, 중국의 사신에게서도 뛰어나다고 인정 받은 이 자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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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4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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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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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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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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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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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0 1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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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4 1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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