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스푸가 들려주는 세 나라의 교류 이야기
#6 다른 나라에 마을을 세우다
중국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그래, 자장면이야. 자장면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건, 인천 차이나타운 덕분이야. 차이나타운은 청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지만, 자장면뿐만 아니라 청나라와 조선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했어.
당나라의 신라인 마을
통일 신라 때 수많은 신라 상인들은 당나라로 건너갔어. 당나라 황제를 만나러 가는 사절단을 따라 간 거지. 신라 상인들은 당나라의 값진 비단이나 금속 공예품을 구입해서 신라의 귀족들에게 팔곤 했단다.
당나라와 통일 신라 사이에 교역이 활발해지자, 신라 상인들 중에는 귀국하지 않고 아예 당나라에 머물며 교역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어. 신라 상인들은 당나라에 자기들만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어. 이런 마을을 ‘신라방’이라고 해. 당나라 정부는 신라방을 인정해 주었고, 신라 사람에게 관직을 주어 신라방을 관리하게 했단다.
신라방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 곳곳에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곳이 적산촌, 초주, 양주였어.
적산촌은 산동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었어. 앞에서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가다가 산동 반도로 이어지는 바닷길에 대해 설명한 거 기억나지? 적산촌은 당나라와 통일 신라를 오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치는 곳이었어. 그래서 신라방이 생겨난 거야.

적산촌에 세운 신라 사람들의 절인 '적산법화원'이야. 법회를 할 때도 신라의 말을 쓰고,
신라의 관습을 따랐단다. 많을 때는 200명이 넘는 신라 사람이 법회에 참석했다니
적산촌의 신라방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지?
적산촌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초주라는 곳이 있어. 초주는 동서남북으로 강이 흐르는 교통의 요지야. 초주에서는 물자가 풍부한 남쪽이나, 당나라의 수도 장안, 서해를 통해 통일 신라와 일본으로도 다닐 수 있었지. 그래서 이곳에도 신라방이 있었단다.
초주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양주라는 곳이 있어. 양주에는 이슬람 상인들이 많았지. 이슬람 상인들은 바닷길로 아라비아 반도와 중국 동남부 해안을 오가면서 교역을 했는데, 양주가 이슬람 상인들의 종착점이 되는 곳이었지. 신라 상인들은 양주에서 이슬람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을 사서 통일 신라나 일본에 가서 팔았어. 이처럼 신라방은 당나라뿐 아니라 서아시아의 물자를 통일 신라, 일본 등으로 보내는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
조선 시대 삼포의 일본인 마을
조선 시대에는 일본 상인들 중에 조선과 교역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어. 특히 쓰시마 사람들이 많았지. 쓰시마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있는 섬이야. 전체 면적의 97퍼센트가 산이라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어. 그래서 쓰시마 사람들은 바다 밖으로 나가 생계를 꾸려야 했단다. 그중에는 교역을 하기 위해 조선에 오는 상인도 많았어.
조선은 일본 사람들이 마음대로 조선을 드나들면 나라가 쉽게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부산포, 내이포, 염포 세 곳을 개항하여 이곳에서만 교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지. 이곳을 ‘삼포’라고 부른단다. 삼포에는 각각 왜관이 설치되어 있었어. 조선 정부는 일본 사람들에게 교역을 할 때만 잠시 삼포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했어.
하지만 일본 상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삼포를 떠나지 않았어. 삼포에 아예 집을 지어 정착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집들도 점점 늘어나더니 작은 마을이 생겨나게 된 거란다. 개항한 지 100년도 채 안 되어 삼포에 사는 일본 사람의 수가 3000명이 넘게 되었지.
그런데 일본 상인들이 돈을 조선 사람들에게 빌려 주고, 그걸 갚지 못하면 토지를 빼앗거나, 일본 사람들끼리 이득을 다투며 싸우는 등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 조선은 삼포의 일본 사람들에게 귀국을 명령했고, 교역의 물량을 줄였어. 그러자 불만을 품은 일본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조선 사람 272명을 죽이고 집 8900여 호를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어. 이 사건을 ‘삼포왜란’이라고 해. 결국 조선은 삼포를 모두 폐쇄해 버렸어. 삼포의 일본인 마을은 이렇게 100년도 채 안 되어 사라지고 말았지.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인 마을
일본 열도 곳곳에도 명나라 상인들의 마을이 있었어. 그 마을은 ‘당인촌’이라 불렸단다. 명나라는 물자가 풍부한 나라여서 아시아의 여러 상인들은 명나라와 교역을 하기를 원했지. 하지만 명나라는 외국 상인들이 오는 것도, 명나라 상인들이 바다 밖에서 교역하는 것도 금지했어. 조선과 마찬가지로 외국 상인이 자주 드나들면 나라가 위험해진다고 생각했거든.
그러자 명나라 상인들 중에는 몰래 외국 상인들과 교역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로 직접 나아가서 교역을 했는데, 특히 거리가 가까운 일본으로 가는 상인이 많았지. 일본에 간 명나라 상인들은 삼포에 온 일본 사람들처럼 점차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어. 일본 곳곳의 항구 도시에 명나라 사람들만의 마을을 만들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 해서 100년 만에 일본 전체에 수만 명의 명나라 사람이 살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즈음 일본에서도 일본 상인과 외국 상인이 바다를 통해 교역하는 걸 규제하기 시작했어. 그래, 역시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였지. 완전히 금지한 건 아니고, 나가사키라는 도시 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만 교역을 할 수 있게 했어. 그러자 여러 지역의 당인촌에 살던 중국 사람들이 나가사키로 모여들었어.
그 후 나가사키의 당인촌은 두 나라의 교역 창구 역할을 했어. 이 나가사키 당인촌을 통해 들어온 중국 음식도 있었어. 자장면과 함께 손꼽히는 중국 음식이지. 맞아, 짬뽕이야.
다른 나라에 꼭 마을을 세워야 했을까?
세 나라 사람들은 보다 활발하게 교역을 하기 위해 안정된 근거지가 필요했어. 그래서 이웃 나라에 마을을 만들었지. 신라방, 삼포, 당인촌, 그리고 최근의 차이나타운까지. 세 나라 교역의 중계지 역할을 한 외국인 마을들은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문화를 교류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지.
*
교역 : 주로 나라와 나라가 서로 물건을 사고파는 일.
법회 : 불교의 본뜻을 풀어 전달하는 자리.
왜관 : 일본에서 건너온 사절단을 맞거나 교역 물자를 정리하던 곳.
이 연재물은 책과함께어린이에서 출간될 어린이책의 내용 일부분을 미리 보여 드리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연재 정보와 필자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연재를 시작하며'를 봐주세요.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원하시는 분은 곤란합니다.
★깜짝 퀴즈★
사람들은 보다 안정되게 교역을 하기 위해 주로 다른 나라의 상업, 교통의 중심지에 마을을 만들어 왔다. 이런 외국인 마을 중 청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명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세워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중국인 마을을 무엇이라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