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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ㅣ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50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4년 9월
평점 :
품절
노벨상 수상 작가인 솔제니친의 이 소설은 구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를 주 무대로 하여, 벽돌공으로 전락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단 하루를 묘사한 작품이다.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나는 일종의 진행 소설인데, 그 진행기간이 일년이나 몇 개월도 아닌 단 하루이다. 이 작품에서 솔제의 치밀한 구성처리와 진행순서의 치밀함은 실로 대단할 정도로 빛을 발한다. 역시 탁월한 스토리 텔러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소설 '이반' 속에는 주인공을 둘러 싼 여러 가지 정황과 사건들이 그의 심리상태와 맞물리면서 아주 상세히, 마치 현미경을 들여 다 보는 것처럼 세밀히 그려져 있다. 시간에 쫓기면서 벽돌을 쌓는 과정이 개미의 세계처럼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소설의 말미에 가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이반'이 식빵- 이 소설의 묘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코드이다 빵을 하나 더 얻게 되는데 자신이 이미 배급 받은 흑빵을 옷 안에 실로 꿰매어 감춘다.그리고 덤으로 얻은 흑빵을 스프와 함께 맛있게 먹고, 내일은 풍만하게 먹을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안고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거친 흑빵 한 덩어리를 더 먹게 되었다면서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잠자리에 드는 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제한된 공간에 갇힌 그에게 잉여로 생긴 빵 한 덩이는 이제 그의 재산이 된 것이다. 이른 바 축장된 자본이 생긴 것이다! 그 축장된 자본을 생각하며 포만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순진함이 때론 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미 있는 사실은 강제노동수용소에서도 빈부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정신 노동을 행하면서 풍부한 음식물을 즐긴다. 이들에겐 소포로 부쳐지는 음식물의 양도 풍부하다. 물론 고급 담배도 포함해서. 또한 이들의 주변엔 그 음식물을 관리해주면서 그가 남긴 음식물과 먹지 않는 음식물을 얻어먹는 인간도 나타난다. 이들의 태도 또한 우습기도 하다. 마치 나는 너희들보다 더 풍부하게 음식물을 먹을 권리가 있으니 나에게 잘 보여라 식이다. 지주와 마름의 관계, 자본가와 그 대리인의 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강제노동수용소는 마치 축소된 자본주의의 모습을 띄게 된다.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재교육을 받기 위해서 보내진 노동수용소에서 자본주의를 배우고 오니 말이다.
소설은 현실의 반영이다. 인간 군상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대로 반영된다. 구소련 당국은 솔제의 이런 세밀한 묘사가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민중들에겐 사회주의야말로 유일무이한 인류의 대안이며, 평등 사회와 경제적 자유, 착취와 억압이 없는 제도라고 늘상 선전해 왔는데 소설 '이반'은 이런 선전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니까. 자신의 치부를 들춰내는 소설이 결코 달가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옛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서는 억압과 압제가 난무했다. 그리고 지금 북한과 중국, 베트남 등 현실 사회주의권에서도 이런 억압과 압제가 난무하고 있다. 다만 이런 억압과 압제가 과연 누구에게 향한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신의 사회주의 제도가 인류의 영원한 대안이라고 믿는 정치 지도자에겐 자신의 제도를 부정하고 없애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탄압과 압제의 대상이 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이 지구상에 이데올로기가 있는 한 이런 압제와 탄압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 '이반'을 편향된 시각이 아닌 중립적 입장에서 한번 탐독해 보라. 그 속에는 인간군상의 모든 모습들이 녹아 있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 권력과 지배의 관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관계 등이 농밀하게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