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철공소
황규섭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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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소설의 시대는 갔다고 활자로 된 것들에 매달려 밤새 희노애락의 온갖 감정의 바다에서 과몰입했던 그 시절은 나의 젊음과 함께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끊고 한동안 영화를 보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그마저 끊었다. 요즘 영화의 우당탕한 그 속도를 쫓아가는 것이 버거웠고 겨우 쫓아갔다 하더라도 감정적 소모가 너무 심한 까닭이다.

몸의 근력이 빠지면 걸음의 속도가 늦어진 것처럼 감정의 근력이 조금씩 소실되는 탓에 정서도 마음도 속도조절이 필요해진 것이다. 영화든 현실이든 좀체 조금이라도 빠른 전개가 가져오는 것에의 멀미...


그랬는데 이 책을 읽었다. 추리소설이라니... 그것도 우당탕한 영화의 단골소재인 살인의 이야기를 읽다니... 그런데 단숨에 읽었다. 프롤로그부터 몰입하게 하는 낮게 깔리는 음산하고 비통한 아베마리아의 선율.


역시 이야기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살인자는 마치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듯이 악마의 자식이라는 자신의 저주받은 운명을 실천한다.

세상의 성공과 밝음에 대한 곳곳에 그의 적대적인 상처가 덧칠해져있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말 못하는 어머니는 살인자인 조한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말문이 막힌 세상을 향해 그의 상처와 분노는 잔인하게 왜곡되어 비뚤어진 채 드러난다.

형사와 범인의 쫓고 쫓기는 구도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어찌 보면 뻔하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이런 뻔한 주제를 새롭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작가는 이야기 전편의 잔인함을 상쇄하고자 여성인물들을 등장시킨다. 범인의 손에 죽어가던 송요환 아내에 대한 의미 모를 연정과, 어머니와의 원초적인 결속, 그리고 하덕규 아내의 헌신 같은,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에게서는 각각의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보인다.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마땅하지는 않지만 그것에서 잔인한 살인자인 조한곤 내면의 깊은 슬픔을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처럼 눈을 떼지 못할 만큼 긴장감을 가지고 읽은 소설이다.

범인의 내면을 따라가는 일이 고통스럽고 불편했지만 곳곳에 클리세라든가 복선 등의 소설적 장치가 느껴져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영상으로 보는 듯한 탄탄한 문장력도 돋보인다. 또 하나의 묘미는 마지막 피해자와 범인의 사패 싸움이다. 누가 더 사이코패스일까? 그리고 왜 마지막 피해자는 살해되지 않고 살아 남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를 살려 두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 긴장감과 두뇌싸움을 목적으로 한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이 정도쯤은 되어야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런 모습을 가진 자들이 이 사회에서 더 호강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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