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미로 필립 K. 딕 걸작선 2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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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로>라는 제목처럼 이 소설은 출구 없는 미로에서 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원히 우주를 떠돌아야 하는 페르서스 9호의 선원들은 죽음과도 같은(아니, 죽음보다 더 두려운) 무료함에서 일시적이나마 탈출하기 위해 다뇌 융합의식을 이용한다 ..
하지만 그들이 구축한 세계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거대한 미로다..
더욱이 현실세계에 잠재된 적의가 그 세계에서 발현되어 끔찍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적의는 끝이 없는 행해가 계속될수록 점점 더 커지고, 그것은 그들이 구축하는 다뇌 융합세계를 점점 더 살벌한 세상으로 만드느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 지옥같은 융합세계에서 그들이 의존하는 것은 종교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추출된 결과물인 융합세계의 종교는 지금보다 과학에 근접한, 증명된 사실이다..

-정말이지 '중재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걸 창조했던 거야.
 그걸 원했기 때문에. 갖고 있지 않았지만 갖고 싶었기 때문에.
                                                                      -본문 296

현실로 돌아온 몰리는 다시 델멕-0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메리와 러셀 역시 대답은 마찬가지다..
그곳 역시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이긴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끊임없이 그곳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고 대답을 구한다..

다뇌 융합세계에서 직접 신을 만나고 무신론자인 배블과 열띤 언쟁을 벌였던 몰리는 종교를 자신들이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가득채운 '중재신', '조유신', '지상을 걷는 자'에 대한 기억은 가시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 기억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현실 앞에서 어느새 믿음으로 자리했는지도 모른다..
그 믿음은 융합세계의 신을 현실세계로 강림시키고 그를 출구없는 미로에서 구원한다..

지옥같은 현실에서 만든 도피처는 안식처가 될 수 없다..
그들이 만든 도피처는 현실과는 또다른 지옥을 구축하고 그 지옥은 점점 더 흉포해질 것이다..
지옥의 악순환..
빠져나올 수 없는 죽음의 미로에 출구를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그들 자신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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