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스Theos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하느님‘을 지칭하고 로고스Logos는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신학Theology은 ‘하느님에 관한 말‘ 혹은 ‘하느님에 대한 학문‘을 뜻합니다. 동시에 창조된 모든 것들에 대한 학문을 뜻합니다. 성요한은 "하느님은 빛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빛은하느님 자신과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우리에게 전해 줌으로써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비춥니다. - P19

당연히 성교라는 것은 사랑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삶의행위입니다. 성은 하나의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이분야의 저명한 작가인 자넷 스미스Janet Smith 교수는 여러분이누군가와 교제할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권고합니다.
"내가 정말로 이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은가? 내가 이 사람아이의 엄마 혹은 아빠가 되고 싶은가?" 이는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여러분이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만 결혼하고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떨쳐 줄 것입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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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렛에게 지혜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해 아내 곧 땅 위의 가장 사소한 일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는 먹고 마시고 노동하며 즐거워하는 것에서 삶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촉구한다. 그는 부조리하고 치열하고 냉혹한 현실 속에서, 새로는 모호하고수수께끼 같은 삶 속에서 먹고 마시고 노동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행위를 가장 가치 있게 여기라고 당부한다. - P27

"헤벨"은 구약 전체에서 명사형으로 11회 나타나는데, 그중38회가 전도서에서 사용된다. 이로써 코헬렛은 전도서가 "헤벨"의 책이라고 강변한 셈이다. "헤벨"의 기본적인 뜻은 바람, 숨(호흡), 안개다.
"헤벨"은 히브리어와 같은 어족인 아카드어 "아벨"에서 기원한 듯 하며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의 형제 "아벨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말 성경에서 아담의 둘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로 통일되어 있지만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아벨의 철자 형태가 주로 "헤벨" (5)로 기록되어 있다.‘ 가인의 형제 아벨은 너무나 짧은 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류는 "아벨의 이름을 달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형에게 죽임을 당해 요절한 아벨은 이미 인간의 비극적인 삶을 예고한다. 엘룰이 지적했듯이 아벨은 희생 제물을 드린 경건한 사람이었지만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했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인가??
이런 배경에서 "헤벨"은 사전적 의미에 갇히지 않고 그 경계를 과감히 넘어 덧없음, 공허, 허무, 헛됨, 텅 빔, 부조리의 영역으로 확장되는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헤벨"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잠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것, 곧 일시성에 초점이 모이는 덧없음이다 - P64

코헬렛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가르치는 지혜자 집단에속한 전문가다(전 12:9-12). 앞서도 지적했듯이 전도서의 맺음말을 해석학적인 가필로서 이해한다면 코헬렛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숨긴채 솔로몬의 의상을 걸치고 위대한 왕의 경험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고 할 수 있다. 곧 코헬렛이 왕으로 가장하여 솔로몬으로 자처했다는 것이다. - P81

"헤벨"은 삶의즐거움과 행복이 불가능하다는 염세주의자의 판단이 아니라 절대자하나님의 신비를 인식한 자의 겸손한 고백이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의 긴장을 모두 살피는 인식의 틀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여기서 기원전 5세기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제시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명제가 뒤집힌다. 코헬렛이 "헤벨" 선언을 통해 인간이만물의 척도라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즉 코헬렛은 인류의 노동과 온갖 성취와 업적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격파한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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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개념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이다.
하지만 이 행동은 역사가 성숙되는 과정을 통하여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에 발생한다. 신약성서는 이 계기를 그리스어로 카이로스(Kairos),
즉 ‘시간의 완성‘이라고 부른다. ‘올바른‘ 시간이나 ‘적시‘를 의미하는 원래 의미는 단순히 측정되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 (chronos)와 대조된다. 그리스인들은 카이로스를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 적합한 때에 사용했다. 신약성서에서는 카이로스를 그리스도가 오시는 특정한 때를 지시하는 데 사용했다. 예수는 자신의 고난과 죽음의 때(카이로스)를 말하고,
예수와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카이로스)를 말하였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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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우리의 지식과 능력과 자원을 한 자락 더한들 그분의 무한함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드림은 결국 사랑 안에있다. 그리고 사랑은 예배 안에 있다. 예배 드림은 인생 최고의 영광이다. - P70

나는 기다렸다. ‘바로 이때다‘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기까지. 바람만을 의식하며 돛을 올리길 기다리는 사공처럼 나룻배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지냈다. 그 기다림은 1년 2개월간 지속됐다. - P117

단조롭고 권태로운 일상을 임재의 밀도와 기쁨으로 채우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반복된 일상의 한 걸음이라도이것이 믿음 안에 있으면, 그 시간은 기름부으심 안에서 약속의성취로 당신을 이끌어갈 것이다. - P169

자, 그렇다면 이 견고한 적진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 정치 세력 가운데? 사악한 문화와 사상 가운데? 아니다. 가장 먼저 진멸해야 할 세력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는하나님의 임재를 거부하는 적군의 요새가 있다. 십자가에 굴복하지 않는 나의 의, 은혜에 저항하는 나의 교만, 거룩한 통치를 거부하는 나의 정욕이 진정으로 정복해야 할 적의 요새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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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문장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러티브가 논리적으로 앞으로 흘러가는 내러티브가 있습니다. 이것이 내러티브의 뼈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가장 기초가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경(foreground)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내러티브에서 전경에 해당하는 방식이 전체 동사에서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히브리어로 봐익동 동사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내러티브가 앞으로 전개되지 않고 멈추어서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런 문장을 우리는 배경 (background)이라고 부릅니다. - P56

상수리나무는 당시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 신성한 곳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왕을 세우고, 죽은 이들을 매장하고, 우상들을 묻어 버리는 등의행위들은 모두 당시 사람들에게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했던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서 죽었다는 내러티브는 독자들에게 그가 나무에 달린 자로서 저주를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신21:23), 또한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았음을 상징적으로 그려주는 장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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