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6과 1:27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을언급합니다. 고대근동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왕을 가리켰던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말은, 곧 인간을 ‘왕 같은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28

돕는 배필(창 2:18) ① 반대하며/반대하는 돕는 자② 동등한 돕는 자⑨ 하나님의 도움을 주는 통로 - P35

이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창세기 1-2장의 창조질서에 나타난 원상태의 회복이며,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이야기할 때 하나님과 나의 관계회복이라는 ‘영적 구원‘
만을 전부라 할 수 없습니다. 자존감의 회복, 타인과의 관계 회복,
모든 생물·자연과의 관계 회복으로 말미암아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통전적인 구원‘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사역이란 단순히 영혼 구원만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인간과 생물과 자연이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구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혼구원‘이라는 용어보다는 ‘생명구원‘이라는 표현이 더성경적입니다. - P41

하나님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영성입니다.



‘함께함으로 형통하다‘라는 문구가 창세기 39장에 무려 4회나 나옵니다(그중 한번은 약간 변형된 형태 ‘인자‘로, 21절).
하나님의 함께해주심이 요셉의 형통함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 P69

‘토라‘의 본뜻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연애편지‘나 ‘사랑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십계명이나오기 이전에 먼저 구원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십계명을 잘 지키면 구원해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억압받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먼저 구원해놓으시고, 그다음에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구약은 결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일방적으로 구원시켜놓으시고, 그 구원의 상태를 그들이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을 주신 것입니다. 신약과 마찬가지로 구약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구원법‘(救援法)이 아니라 ‘성민법‘(民法)입니다. - P110

우리는 신명기 6장에서 신명기의 다른 모든 가르침들의 중심축이 되는 ‘쉐마‘ 혹은 ‘으뜸 계명‘이라고 간주되는 신명기의 핵심적인가르침(신 6:45)을 만나게 됩니다. ‘율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쉐마‘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신명기 6:4는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아‘로 문장을 시작하지만 히브리 성경을 보면 첫 단어가‘들으라‘ <쉐마>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더 정확한 표현은 ‘쉐마! 이스라엘‘이라고 해야 합니다. - P206

창세기는 ‘약속 신앙‘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족장들에게 끊임없이 약속을 주십니다. 출애굽기는 ‘구원 신앙‘을, 그리고 레위기는 ‘성화 신앙‘을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민수기는 ‘고난신앙‘, 곧 ‘광야 신앙‘을 보여줍니다. 오경의 마지막에 위치한 신명기는 ‘나눔 신앙‘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오경 신앙은 신명기에 와서 드디어 꽃을 피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서(창세기), 구원을 경험하고(출애굽기), 성화의 길로 걸어가면서(레위기), 광야의삶의 한복판에서 (민수기),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며 사는 삶(신명기)이 바로 오경 전체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신앙입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인 신명기는 ‘나눔 신앙‘을 강하게촉구하고 있습니다.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