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아래는 고통, 다시 말해 당신의 고통이 숨어 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 사회는 분노를 두려워한다. 분노가 잘못됐고 부적절하며 부적합하다고들 말하며, 심지어는 거칠고 너무 지나치다고도 한다. 분노를 다루는 법을모른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제이다. - P35
분노는 곧 저항의 힘이다. 다시 말해 상실의 공허감 꼭마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닻이 될 수 있다. 처음에 슬픔은 마치 바다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내 누군가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 누군가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주변에 없는 사람일 수도, 사랑한 이가 죽은 후 태도가 달라져버린 사람일 수도 있다. 갑자기 큰 구조물이올라온다. 그들을 향한 분노가 바로 그것이다. 분노는 드넓은 바다위로 당신과 그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가 된다. 그것은 지지대와 같은 것이 된다. 분노의 힘으로 만들어진 그 연결선은 아무것도없는 것보다는 더 낫다. - P36
사람들은 흔히 슬픔에 잠긴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하며상황을 너무 냉담하게 보지 말고 삶의 밝은 모습을 보라고 말한다. 흥겹게 해주려는 이 같은 반응은 어쩌면 정작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표현한 것이고 그런 시무룩한 얼굴을 장기간 참아줄 인내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애도자가 충분히 자신의 슬픔을 인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그는 슬퍼 말라는 말 없이 다만 함께 앉아 있어준 그 사람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 P46
절망을 치료하는 일은 균형을 맞추려는 행동이다. 손 쓸 수 없이계속되는 절망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도록 슬픔을 적절하고 자연스런 상실의 단계로 받아들여야 한다 - P45
견디기 힘든 고통인 만큼, 절망 안에는 슬픔에 도움이 될 요소가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를 느긋하게 만들어 상실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절망은 밑에서부터 다시 우리 자신을 새롭게일으켜 세워준다. 그리고 우리가 성숙할 수 있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준다. 평소에는 다가가지 못했던 영혼의 깊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 P46
슬픔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찾아올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압도당하는 기분을 피하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의식하라. 하지만 고통 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것을 오히려 확대시킬 뿐이다. 슬픔 속으로내려가 그것을 느끼려 한다면 많은 공간이 생길 것이다. 고통으로자신을 씻어내어 몸과 마음으로 돌아온 에너지를 느껴보라. 슬픔에게 항복하면 상상했던 것보다 자신이 훨씬 더 강해졌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고통의 정중앙에 놓여 있으며, 고통은 제법 고통스럽겠지만 외부의 산책을 통해 기분을 전환시키면 그것을더 빨리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 P155
사랑하므로 인간은 다른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고, 슬픔은 잃어버린그 연결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슬픔을 회피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회피하길 원하는 건 상실의 고통이다. 슬픔은 궁극적으로 고통 속에 있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치유의 과정이다. 그 고통과 사랑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상실의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면 함께 나누었던 사랑과 삶을 피해야 한다. 영국 출신 작가인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고통은 그 당시의 행복의 일부이다. 결국 거래인 셈이다." 상실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다. - P289
왜 애도해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잘 애도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 두 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슬픔은마음과 영혼 그리고 정신의 치유 과정이다. 그것이 완전함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이다. 애도할지 말아야 할지가 문제가 되어서는안 된다. 문제는 ‘언제‘ 애도할 것이냐이다. 충분히 애도하기 전까지는, 그 마무리되지 않은 일의 여파로 인해 고통당한다. - P295
슬픔과 애도의 힘이 우리를 치유하고, 잃었던 그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은총이며, 슬픔의 기적이다. 그것이 곧 슬픔의 선물이다. - P298
"삶은 하나의 성취이고, 죽음은 그 성취의 일부분입니다. 죽음을앞두고는 부드러움과 다정한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그 이상도 아닙니다." -테레사수녀 죽음은 삶과 사랑, 발견과 상실이며, 성취의 일부이다. 처음으로 사랑한 이를 잃었을 때, 삶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슬픔의 다섯 단계를 경험하고 나면 처음 상실을 겪었을 때는상상할 수도 없었던 의미심장한 가능성을 안고 삶으로 돌아간다. 슬픔과 그것의 독특한 치유의 힘은 우리를 무의미에서 다시금 의미로 되돌려놓는다. 만약 여섯 번째 단계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의미심장함‘ 혹은 ‘의미 회복‘이라고 부를 것이다. 상실은 극복하는 것도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풍요로움을 찾는 것이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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