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민족주의, 애국심하면 이기주의가 연상되어서 평소 별로 동조하지 않는 감정이었는데 나도 어제는 그 소식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채식주의자에서 자연과 하나되는 뉴에이지 사상이 불편한 나는 ‘흰’ 책에서 작가의 탁월한 언어능력을 앎에도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정말 기뻤다.
도서관에서 북클럽 책을 찾다가 우연히 한강이름을 보고 집은 책이었다. 24년전 이 심사위원들은 장래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작가를 심사했다는 것을 알까? 앞에 심사평이 있는데 오정희를 빼고는 같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하자가 없다는 평가는 너무나도 오만하다. 다행히도 대상수상작인게 그들에게 덜 부끄럽게 됬다.
아기부처의 얼굴을 보는 꿈을 꾸는 나는 온 몸에 화상 흉터 자국이 있는 남편을 연민과 혐오로 대하고 그로 인해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그 와중에 남편은 바람을 피고 여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엄마는 중풍을 앓고 나서는 불화를 그리며 도를 닦는다. 여자는 냉정했던 엄마를 품고, 자기를 버렸지만 다른 상대에게 버림받은 남편을 엄마가 불화를 그리며 도를 닦듯, 아기부처를 빚으며 받아들인다. 소나무는 늘 푸르지만 색이 다르다. 겨울에는 견뎠지만 봄에는 기쁘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봄에 새싹을 내듯 생을 살아간다. 생에 붙잡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고 -남편의 외면; 화상흉터, 완벽주의, 성질-만이 아니라 내면: 연약함, 버림받고 싶지 않은 두려움-도 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도( 우유부단함, 회피, 혐오, 오만..)깨달으며 새 싹을 내듯 새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작가는 한가지 이야기만을 한다고 얘기한 작가가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도 채식주의자 주인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작가가 어려움을 감내하고 속으로 삭히는 성향의 사람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상처는 보이고 치유를 하고, 받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구원자이고 싶고 구원받고 싶지만 내가 빠져 있는 구덩이는 넓고 깊어서 ‘나’는 희노애락애오욕이 없는 식물이 되고 싶기도 하다가 아기부처의 얼굴을 그리며 도를 닦는 길을 시도해 보지만 외할머니의 임종전 부끄럽다는 말처럼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한강 작가의 글은 슬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