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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소망은 희서로 부터
이은효 지음 / 엘림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준 엄마라는 존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주제를 이 책은 매력적인 일러스트와 진솔한 이야기로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글쓴이가 세심하고 다정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리곤 했다. 인상적인 몇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엄마라는 존재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발견한 “온전”이라는 단어도 “완벽한 찬양”의 표현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글쓴이에게 엄마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엉뚱하고, 잘 웃고, 잘 울고 ... 알록달록하고 요상한 패턴이 들어간 옷을 즐겨 입고, 송곳니가 조금 뾰족하고 ...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시선을 두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잡아 끝내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간명한 말보다는 때론 장황한 표현일 수 있다. 그리고 현명, 지혜, 웃음, 울음과 같은 다른 이들도 공유하는 특징을 쓸 수도 있지만, “옆 사람과 손을 잡고 잡아 끝내 커다란 동그라미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오직 당신만을 표현하는 말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엄마는 아이를 잉태했을 때 태명을 희서(喜書)라고 지었다. ‘기쁨의 편지’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을 글쓴이는 마치 자신의 운명이라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에 낳아준 부모에게 “다른 어떤 감정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소망”으로서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을 택한 보답”, “정확히는 나의 엄마가 될 것을 택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나를 딸로 두어서 자랑스럽고 으쓱하기를” 바라며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최선을 다했다. 그만큼 아이는 엄마를 사랑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문득문득 엄마와의 오지 않은 이별이 벌써 두렵기도 했다. “지윤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만으로도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다.” 어느 밤에는 젊은 날의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린 적도 있었다. “그 젊고 활기차고, 한때는 외로웠을 지윤의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이런 감정을 ‘연민’이라고 표현했는데, 과연 이런 연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책은 이별로 시작해 이별로 마무리된다. 시작은 원래 한 몸이었던 이들, 아이가 엄마의 안전한 배 속을 떠나려 발버둥치는 순간이다. 이런 탄생-이별의 순간이 없다면 글쓴이의 말대로 “서로 때문에 눈물을 흘릴 일도, 화를 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글쓴이가 이 순간을 “서로에게 몰두하고 있던 두 사람”의 시간이라고 말했듯, 이별이 없었다면 만남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 시간 이후로 “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갉아먹으며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사랑과 감사 그리고 안타까움 등 여러 감정들이 유독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연민을 걷어내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그 계기를 통해 글쓴이는 엄마와의 관계도 재정립한다. 이런 인식은 책의 말미에서 이별에 대한 인상적인 비유로서 그려지는데, 이때의 이별은 연민보다 더 다양한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은 한 아이가 부모와 세상과 만나 거듭 태어나고 이별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긴 편지라고 할 수 있다. 그 편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낸 사랑을 아이가 기쁨으로 가져왔고, 아이는 자신이 보낸 깨끗한 소망이 엄마에게 행복으로 도착하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