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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푸른사상 동시선 58
김정원 지음 / 푸른사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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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시 한 편>

 

어려운 때

 

바람이 거세게 불수록
깃발은 구김살 펴고
더욱 힘차게 휘날려요
높고 춥고 외로운
공중에서도

 

 

제비꽃

 

콘크리트 벽과 아스팔트 도로 사이
활짝 피어 웃는 작은 제비꽃
나는 머리 숙여 한참 들여다봐요
그 보랏빛 꽃이 결코 작지 않아서

 

- 김정원 동시집, 『꽃길』 (푸른사상,2020)

 

 

 

 

김정원 시인의 첫 동시집 『꽃길』을 읽는다. 어린이들이 사물을 정직하고 깊게 보도록 하고 싶다는, 그리하여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눈여겨 읽도록 하고 싶다는 시인의 애틋한 바람들이 시 속에 오롯하다. 시인이 말처럼 우리 아이들이 반듯한 길을 가는 것도 좋지만 구부러진 길을 걷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숙제 없는 해처럼 동해에서 서해까지 맘껏 헤엄치고” 싶은 아이들, “그늘을 딛고 일어서”는 들꽃 같은 아이들이 이 『꽃길』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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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바게트 시인수첩 시인선 35
리호 지음 / 문학수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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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 시인의 첫 시집 『기타와 바게트』를 읽었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길은 걸어가는 데서 이루어진다(道行之而成)”는 장자의 말이 언뜻 생각났다. 남들이 안 가본 시의 길을 그는 묵묵히 가고 있었고, 그리고 이제 그는 긴 수업 하나를 마쳤다. 시인이 이식한 시적 대상을 조종하고 주도하면서 세계와 만나는 장면이 낯설고도 경쾌하다.

 

<시집 속의 시 한 편>

 

하루 한 끼 정도는 같이 해요
탁자가 기울기 전까지는 서둘러 식사를 끝내요
노릿하게 잘 구워진 태양에 새가 앉았네요 삼족오라고 불러 달래요
샤토 디켐 한 잔과 열다섯 가닥의 바람이 절묘하게 새겨진 나이프
오늘의 특별요리는 북두칠성이네요
긴 막대 하나는 스페어로 가지고 다녔으면 해요
탁자가 기울면 그것이 필요할 거예요

 

열 살 적 생일 선물로 세 발 달린 개에 대한 설화를 만들었다
복을 가져다주는 이야기였다
이야기꾼이었던 아버지는 그해 가을
웃자란 새벽 까마귀를 따라가셨다
성격도 참 급하시다 우는 방법도 익히기도 전인데

 

태양의 흑점이 폭발할 때마다 알 낳는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미완성의 탁자에 아버지가 다녀가셨나 봐요
오늘따라 아이가 검은 콩자반을 칠칠맞게 뚝뚝 흘렸어요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요
이제 긴 수업을 마쳤어요

 

리호, 「다리 세 개 달린 탁자」전문, 시집 『기타와 바게트』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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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긴 비문 작은숲시선 (사십편시선) 29
김정원 지음 / 작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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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 김정원

 

뿔도 없는 매미가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을
머리로 자꾸 들이받는다

 

나는 창문을 열고
거실로 얼른 달려가
형광등을 끈다

 

원전 하나가 날개를 접고
낮달 같은 지구에
혈색이 돌아오는 밤

 

- 김정원 시집, 『마음에 새긴 비문』(2019,작은숲)

 

* 대지의 젖가슴에 엎드려 울고 있는 시인의 마음새를 읽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온다. 꽃보다 밥이고 삶이다.그리고…… 어머니가 라면봉지에 싸 주신 구운 갈치 두 토막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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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걷는사람 시인선 14
길상호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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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ㆍ2 / 길상호

 

얼음 달이 녹기 시작했어요. 나와 함께 반월에 가요 달 녹은 물을 받아 마시면 반쪽 얼굴, 그늘만 무성한 숲 발길을 끊은 새들이 돌아올지 몰라요 달빛 두 줄기로 얼마 동안은 그곳까지 철길이 이어진대요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요 역사 뒤편 야산 흑염소들이 죽은 나무들을 들이받으며 쿵. 쿵. 쿵. 밤과 낮의 박자를 되살려놓고 있어요 빛나는 두 개 뿔엔 달의 오래된 음들이 겹겹, 얼음을 깨고 다시 태어날 어린 시간을 만나러 가요 밤이 다 녹아버리고 나면 간신히 이어졌던 철길이 또 지워질지 몰라요 자, 어서 가서 우리 얼음 달의 마지막 한 방울 노래를 들어요

 

- 길상호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2019, 걷는사람)

 

*「반월」,「반월ㆍ2」,「L」,「반월 저수지」…….  반월이 많다. “반월역, 플랫폼에 내렸는데 달의 한가운데였다. 출구는 하나뿐”

그가 알고 있는 반월이 내가 알고 있는 반월과 같은 곳인지 궁금하다. 만약 같다면 플랫폼 어딘가에서 스치듯 한 번쯤 그와 마주쳤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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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2019-11-20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말씀하신 그 반월이 맞습니다. ^^ 혹시 반월 사시나요?
 
어떤 것 문학동네 동시집 74
송진권 지음, 정인하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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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의 잠자리 / 송진권

 

각목을 뚫고 나온
녹슨 못 위에 잠자리 한 마리
이불을 편다

 

요렇게 널찍하니 좋은 데를 놔두고
다들 어디가서 주무신댜 그래

 

- 송진권 동시집, 『어떤 것』(2019,문학동네)에서

 

 

* 가벼움의 경지가 저 잠자리 정도는 되어야 녹슨 못 위에도 앉아볼 수 있겠다. 송진권 시인은 내가 아는 한 새를 가장 가볍게 그릴 줄 아는 시인이다. 그가 알려준 매뉴얼대로 새를 그린다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누구나 그만큼 가비얍게 새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동시는 아슴한 추억과 슬픔이 배어 있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지나간 어떤 것들이 사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말을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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