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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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열린책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쓰는 글 입니다.


세상을 향해 만개할 준비가 막 다 된 젊은 영혼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튼튼하고 단단하고 아직은 살아있는 육체를 온전히 남겨두고. 



"막 젊은이가 된 남자의 뇌사.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
그리고 이 책에 주어진 시간은 딱 24시간. 


남아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아 이겨내는가를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장기를 이식을 결정하고 실행하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다. 


24시간 동안 한 사람의 생이 다른 사람의 생으로 어떻게 이동되는지를 
작가는 마치 파도를 타는 것처럼 너울너울 문자로 옮겨 놓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심장”이다. 


심장이 필요 없게 된 주인과 
심장이 필요한 누군가 
그리고 그 둘의 가족과 애인과 친구. 
응급실부터 심장 이식 전문가까지 다양한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들 
전혀 상관도 없고 엮일 일도 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이 


“심장”하나 때문에 24시간 같은 시간의 선상에 서게 된다. 
그리고 24시간 뒤. 각자의 시간으로 흩어지게 된다. 
너무도 담담하게.  글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인 강렬한 이야기

영미권 혹은 일본 소설만 주로 읽어왔던 나는 프랑스 소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아멜리 노통브 밖에 읽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신선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스타일인지 모르겠으나.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이 길고 서사적이다. 상황과 인물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어 문장을 읽다가도 숨이 넘어갈 느낌이 들었는데. 번역자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덕분에 글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잠깐 호흡을 놓치면 그 긴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니까.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 싶은 수많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 상황설명은 이 소설의 핵심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아주 효과적으로 될 수도 있고 
세상 지루한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초반에 시적인 서사에 이끌려서 책을 보다가 중반쯤 집중력을 잃은 이유가 바로 그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을 19살에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몬랭브르로 두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과 지루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을 잠시 덮고 이 이야기의 중심이 심장이라고 정리하는 순간. 수 많은 인물들의 묘사와 등장과 그들의 행동이 점점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그저 출렁이던 바닷물에서 지루하게 둥둥 떠 있다가  나를 들어올려줄 파도의 기운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파도에 오르는 순간. 문장에 엮여진 언어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여유가 생긴다.(번역하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어요!)

작가의 묘사는 두 가지 결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일상과 사람에 대한 묘사는 비유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쓰는 반면에
전 후반부의 의료적인 행위들은 굉장히 직설적인 묘사를 함으로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생생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덕분에 낯선 소재인 심장 이식이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진다.

아름답고 서사적인 기교를 사용하지만 이야기는 담담하게 끌어나가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아 사람의 언어는 참 아름답구나. 나도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책의 소감을 써야하는 서평에 너무 힘을 주지 않았나 싶다. 



이런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 열린책들에 감사인사를 드린다.

*열린책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쓴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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