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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 죽어가는 행성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기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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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들은 지구를 떠나지 않겠다는 단호함과 서로 돌보는 관계를 맺고자 하는 다정함을 가지려 했다. 전문가주의적으로 가르치려는 건조한 설명이나 외부자적 시선에 머물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우러난 고민을 함께 녹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 걸기'이기도 하다.

- 여는 글 중에서

에코페미니즘 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출간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그런 책이다. 이 지구, 이 나라, 이 땅에서 사는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최근, 기후위기는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넘어섰다.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에코페미니즘은 기후, 환경, 돌봄과 관련한 담론을 펼칠 수 있는 광장을 마련해줄 것이다. 기후위기 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고민이나 실천을 알고 싶어 책을 읽었다.


책의 서두에는 '에코페미니스트의 다짐'이 실려 있다. '우리는 모든 소수자 및 비인간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한다'는 다짐은, 이 책이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1부 - 기후위기시대 에코페미니즘

1부 '기후위기시대 에코페미니즘'에서는 기후를 둘러싼 정치적, 윤리적 담론 등을 다루면서, '정의로운 전환'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시한다. 1부에는 기후와 관련된 통계나 유의미한 지표가 많이 나온다. 기후위기는 조용하고 보이지 않게 찾아오는데, 숫자로 제시된 현 상황과 정치적 담론을 읽으며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가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더 심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달라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내게 강제한 인식의 순간이 아닐까. 인식이란 모르던 것을 깨우치는 앎으로, 단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지식과는 다른 종류의 각성이다. 늦었더라도 우리는 내가 발 딛고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일종의 붕괴감각을 깨워야 한다.

- 48쪽

내가 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실천'으로 나아가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개인으로서, '실천'에 대한 방향과 정당성을 고민하지 않는 것 또한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15인의 발화를 통해 우리 삶의 경험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해준다.

2부 - 흙과 자급의 기쁨

2부의 제목은 '흙과 자급의 기쁨'이다. 자급이나 소농운동, 도시농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1인 가구로서 '자급'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자급자족하며 살려면 최소한 볕 잘 드는 베란다가 있는 집에서 흙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있을 때 이런 문장을 만났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요즘 젊은이들이 밥도 없고, 집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허기진 삶이라고 해야 할까? 라면 한끼를 먹더라도 내 생명에게 예배드리듯 귀하게 먹어보고, 단칸방이라도 내 생명의 공간이니 신성하게 가꾸어보고, 작은 화분에라도 채소를 심어 길러 먹다보면, 어느덧 내 생명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고, 다른 생명에 소중해지지 않을까! 밥과 집을 귀하게 여기는 건 자급적 삶을 시작하는 첫길이자 아름다운 길이다. 여성해방의 길이기도 하다.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밥과 집을 귀하게 여기는 것만으로도 자급을 시작할 수 있다니 기분이 따스해졌다. 에코페미니즘이 말하는 자급이란 자급적 노동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 몸과 자연의 연결성을 깨닫고 생산과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소속감과 충만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3부 - 몸의 안팎을 통과하기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견뎌내는 게 어떤 혁명보다 힘든 일임을 알아갈 때였기 때문이다.

- 151쪽

이 장에서는 생리대가 여성 건강과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사회적 터부, 공짜 노동과 연관짓는다. 더 나아가 '건강한 몸'이나 '마른 몸'에 대한 강박, 그리고 자본주의적 문제까지 조명한다. 월경과 월경하는 몸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문장을 읽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당장 나부터도 신체를 횡단하는 상호연결성을 모르고 있었다.

이 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의 생리대가 해외 제품보다 얇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얇은 생리대는 매끈한 신체라인을 추구하는 외모권력사회에 최적화되어 월경을 비가시화한다는 부분이었다. 월경을 소재로 하여 기후위기, 젠더, 신체, 여성 건강 문제를 엮은 내용이 흥미로웠다.

기후문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 기후문제는 다층적인 문제들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 앞에서 우리는 희미하지만 열려 있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 그래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 모두에게 안전하고 다정한, 공생의 사회로 가는 길을.

- 163쪽

'트랜스 경험과 퀴어 상상력' 장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와 취약 계층이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임을 언급하면서, 타자에 대한 이해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레타 가드의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머니즘, 동물권운동, 퀴어운동이 포함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모비-딕』의 고래와 여성의 몸'도 흥미로웠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인 『모비 딕』에서 고래가 가지는 상징성을 서술하며 생태여성주의 비평적 관점에서 소설에 접근한다. '고래'는 자연-물질-여성-동물-몸-에로스에 대한 메타포이며, 여성이 자연, 몸, 소유물, 상품으로 대상화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는 것이다. 고래의 기표와 기의를 재해석하며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몸과 그 주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4부 -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

4장 '인간과 비인간의 얽힘'은 비인간 존재와 인간의 공생에 대해 다룬다. 대표적으로 길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길고양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선량한 시민한테 피해를 끼치고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를 왜 돌봐줌? 사냥당하는 새는 안 불쌍하고 고양이는 귀여워서 불쌍함?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차라리 그 돈으로 저소득층에 기부나 해라' 같은 말들. 이 장에서는 생태를 돌보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비인간 존재의 가치도 경시하지 말아야 함을 언급한다.

비인간의 삶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는 도시 정치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물적 자원이 무엇이며 접근성은 어떤지, 또 동시에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물적 조건 및 담론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 질문하고 그에 응답해나가는 커머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는 인간사회가 독점해왔다고 생각한 도시 내 자원을 이미 인간 아닌 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점유해오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이미 늦었다'는 비판에 관계없이 그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커먼즈의 비배제의 원칙을 도시에서 선언하고 확장해가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정치를 함께 실현시킬 공동체를 마련해야 한다.

- 228쪽


때로 우리는 내가 환경과 나를 위해 하는 이 일이 너무 사소하지는 않은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효과 있을지에 대해 회의하며 좌절하고는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쓰레기를 열심히 분리수거하다가도, 내 기여도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죄책감이나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를 추천한다. 에코페미니스트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나를 둘러싼 생태에 대한 사유를 하고 삶의 방향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삶의 경험이 녹아 있는 책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그리고 공동체의 다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우리의 공동체는 소규모 단위에서 사회로, 국가로, 전 세계로, 그리고 지구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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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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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는

부드러운 물음표로 가득한 책

『가족각본』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유명한

김지혜 교수의 두 번째 기획


『○○각본(가족각본)』


"당신의 ○○은 정상입니까?"




창비 스위치의 『○○ 각본』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가제본 도서를 읽었다.

뒤표지에는 책의 카피이기도 한 '당신의 ○○은 정상입니까?'라는 질문을 통해 '○○'가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내가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던 게 있었나?'라는 질문을 유도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제목의 ○○가 무엇인지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여기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알고 있어도 그것은 내 편견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용인된 반응이라고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제본 도서로는 3장까지의 내용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주제에 대해 명쾌한 답이나 방향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특정 세력이나 시대가 당연시했던 관념의 오류와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그러한 관념이 타파되지 않을 이유를 나열하여 독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뜨리려고 시도한다.

1장 <며느리가 남자면 안 될까>에는 동성 연애/결혼과 가족 구성원에서 '며느리'라는 지위,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가족/사회 단위의 역할을 연결지은 내용이 있다.

저자는 유교적 가족질서가 평등을 위해 해체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 책에는 유독 의문문으로 끝나는 문장이 많다. 그 물음표를 따라가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다.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무색해질 정도다. 법적으로 묶이지 않아도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형태가 다양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는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출생률 하락'을 드는 세력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결혼을 막는다고 해서 동성 커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당연한 이야기다).

저자는 동성 결혼에서 시작한 발제를 혼외출생자로 확장한다. 이때까지 나는 혼외출생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인 '홍길동'이 서자라는 이야기를 하며 결혼제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아이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은 왜 해 ?' 처럼 흔한 질문만 보아도,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마치 출산을 위한 조건인 것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출산과 양육, 그리고 모성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많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보다는 가족/사회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숭고한 행위처럼 받아들여진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한국사회는 아이가 살 만한 사회인지' 질의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 단위에서부터 만연한 한국 사회의 편견'으로 읽히는데, 이 점에서 생각해볼 만한 문장이었다. 편견과 혐오,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 것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 가득한 사회에서 재생산이라는 선택을 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저자는 여러 국가의 통계를 활용하며 출산을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조건이 아님을 역설한다. 우리 사회는 태어나는 모든 생명을 반갑게 여길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출생을 포용하는 사회라면 꼭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출산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도 없다.

물론 저자가 짚고 넘어가는 것처럼, '만약 결혼과 출산의 절대 공식이 해체되면, 그래서 비혼가족이 많아지고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간단한 몇마디로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구분하는 잣대가 유교적 가족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런 잣대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3장 <초대받지 않은 탄생, 허락받지 못한 출산>에서는 사회가 생명의 탄생을 어떻게 여기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이전에 읽은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의 『풍요중독사회』에서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는 상품에 불과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직접 양육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는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①예 ②아니오

부끄럽지만 나는 이때까지 1번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실적으로 양육이 어려운 여건이라면, 출산/양육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10년대 후반 우생학을 받아들이고 1933년부터 우생운동을 전개, 1973년 모자보건법 등을 통하는 등 '병이나 탈 없이 건강하고 온전한 자녀를 출산하여 질 높은 인력을 확보'하는 국가적 과제로서 출산을 장려했다.

우리는 우생학에 기반하여 '정상적'이고 '우수한' 사람이 아니면 태어날 자격이 없다는 차별을 하고 있지 않는가?


"

때때로 가장 강력한 차별은

온정적인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

재생산 권리 보장은 임신/출산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결정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출생하는 모든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한다면,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성별 분업이나 각종 차별, 편견, 혐오가 조금은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사회의 각종 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만, 사실 모든 질문을 아우를 수 있는 대답은 '모든 사람을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하기'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태도가 아닐까 한다.

차별을 묵인하는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던 ○○ 각본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연시했던 것에 균열이 없는지 돌아보고, 나의 역할을 규정하던 여러 지위를 탈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가족이 각본에 불과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https://blog.naver.com/philip1019/22317028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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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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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에서 출간한 공포 성장소설 앤솔러지

『스터디 위드 X』 서평단으로 참여하여

6편의 단편소설을 완독했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6개의 소설을 만나보았다.



막연한 두려움을 함께 이겨내며 성장통을 겪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


학교라는 공간과 방황하는 10대,

경쟁, 사랑, 우정 등이 어우러진

『스터디 위드 X』.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과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에게 모두 추천한다.

학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을,

어른이라면 그 순간에만 느낄 수 있었던 향수를

진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01. <스터디 위드 미>


첫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은

<스터디 위드 미>다.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공부 브이로그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 소설이다.


소연은 전교 1등 수아의 공부 브이로그를 보다

귀신이 붙은 것을 알고 수아에게 그것을 귀띔해준다.

하지만 수아는 자신이 조회수를 위해 귀신을 합성한 것이라 하고,

소연은 자신이 본 귀신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찜찜하게 끝난다.

전교 1등과 귀신이라는 흔한 소재를 차용했지만,

공부로만 성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공에 대한 더 큰 욕망을 지닌 수아의 모습이 신선했다.

중간에 소연의 짝꿍이 수아를 저주하는 듯한 암시가 있는데,

이에 대한 부분은 더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단편 공포소설답게 다 완결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독자에게 공포감을 주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요즘 트렌드 중 하나인 '공부 브이로그'를

소재로 하며 진부한 괴담 형식을 비튼 것 같다.

진짜 귀신이 붙은 수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비단 공부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상대를 짓밟으며 무한 경쟁해야 하는

요즘 사회에 대한 비판이 느껴지기도 했다.




02. <카톡 감옥>


두 번째 작품은 <카톡 감옥>이다.

'카톡 감옥'이라고 하면 2010년대 초중반쯤에,

즉 카톡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괴담처럼 떠돌았던

'나갈 수 없는 채팅방'이 생각난다.

쏘우 프사를 한 사람이 아무나 초대하고

버그를 이용해서 채팅방을 나가도 계속 초대되는..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채팅방에 초대한 적이 있어서

멀지만은 않은 소재로 느껴졌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터디 위드 X』에 실린 이야기 중

제일 무섭고 현실적이다..

공포 별 다섯 개!

학교폭력을 당하던 주인공 정준우는

교과서를 받으러 간 날 도상현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반 단톡에서 도상현으로 추정되는 D라는 사람을 찾아

메신저로 이야기하며 친해진다.

배경이 코로나19여서 비대면 재택수업을 하기 때문에

정준우와 도상현은 첫 만남 이후 만나는 일 없이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서로의 깊은 이야기까지 하게 되고,

D는 정준우에게 학교폭력을 한 아이들에게

자신이 복수해주겠다며 카톡 감옥을 만든다.

아무리 나가도 계속 초대되는 카톡 감옥에서

D는 혐오스럽고 잔인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학교폭력 가해자들을 괴롭힌다.


그러다가 간헐적으로 카톡 감옥에서 탈옥할 기회를 주겠다며

반성의 기회를 주고,

실제로 반성의 기미를 보인 아이들은

카톡 감옥에서 나갈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정준우는 담임의 공지를 통해

D가 자신이 본 도상현이 아닌 것을 알게 되고,

정준우는 D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한다.

D는 의외로 쉽게 카톡 계정을 없애버리고

정준우 앞에서 사라진다.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강병세와 단둘이 카톡 감옥에 남아있던 정준우는

이때까지 D가 보냈던 영상을 클릭하가

강병세가 목매달아 죽은 영상을 보게 되고,

그 순간 이때까지 카톡을 읽지 않던 강병세 때문에

남아있던 1이 사라지며

'ㅋㅋㅋㅋ'하는 메시지가 온다.

강병세는 예전에 죽었고

D가 강병세의 계정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D가 이제는 정준우를 괴롭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D의 카톡 감옥을 통해 이루어졌던 정준우의 복수는

이제 스스로를 향하는 것이다.

'카톡 감옥'이라는 소재와

정체불명의 인물을 통한 복수가 소름끼쳤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메신저가 되어버린

카카오톡을 통해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단순 '괴담'의 느낌이 아니라

'공포'에 가장 밀접했던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정말 언제든지 학교폭력의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까지.


코로나19라는 상황과 비대면 수업,

온라인으로 친분을 쌓는 학생들의 모습을

절묘하게 겹친 스토리라인이 흡인력 있었다.

※다만, D가 카톡방에 보내는 사진/영상에 대한

묘사가 적나라할 수 있으니 읽을 때 주의.






03. <벗어나고 싶어서>


두 번째 작품 <카톡 감옥>이 매운맛이었다면

세 번째 작품 <벗어나고 싶어서>는 순한맛이다.


이 소설은 공포보다 슬픔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죽음 이후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상과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들,

하지 못한 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벗어나고 싶어서>의 가장 무서운 것은

죽어서도 교실에서 수업하는 선생님과

공부하는 학생이 아닐까..

한 편의 서글픈 동화 같은 내용과 묘사였다.







04. <영고 1830>


영홍고등학교 1학년 8반 30번에게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

영고는 성적순으로 반/번호를 부여해서

1830은 영고 입학생 중 꼴찌인 학생이다.

꼴찌로 입학해 영고 1830이 된 양희준은

책상에 앉아있을 때마다 고통을 느끼고,

성적은 오르지 않은 채 계속 1830이다.

강압적인 아버지와도 갈등하던 양희준은

1830의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자신이 쓰던 책상을 버리려고 옥상에 올라간다.

하지만 옥상에서 책상을 버리려던 양희준은

자신이 떨어지고,

양희준과의 몸싸움으로 인해 혼수상태였던 영고 이사장이

그 소리를 듣고 깨어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어른들의 기대와 사회적 압박 속에

몸과 마음이 망가질 만큼 치열하게 경쟁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영고 1830>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건

'1830이 너만 아니면 되니까 공부해'라고 하는 어른들이나,

'나만 1830이 아니면 돼'라는 생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학생들이었다.

양희준이 영고 1830의 저주를 깨는 결말을 기대했는데,

양희준이 죽고 이사장이 깨어나는 것으로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입시제도는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결말처럼 느껴져서 아쉬웠다.

양희준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입체적이었으면 어떨까 싶다.






05. <그런 애>


<그런 애>는 타인의 욕망을 '구멍'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메타포 가득한 소설이다.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SNS에 자신의 신체나 자극적인 사진을 찍어 올리는

학생이 등장한다.


SNS의 자극적인 사진에 관심을 주는 주체도,

소문으로 특정인을 괴롭히는 주체도,

그리고 그런 괴롭힘을 당연하게 여기는 주체도

모두 '익명'이다.

이 소설에서 '구멍'은 욕망을 분출하는 익명의 배출구로 작용한다.

배우 지망생인 솔희가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부분도 나온다. 외모로 인해 건강을 해칠 만큼

다이어트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낸 것 같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소설은 예나와 솔희가 '지니의 구멍'을 태우는 것으로 끝난다.

'누군가의 욕망을 받아 내는 쓰레기통'은

솔희가 자신의 신체를 긍정하고 싶어 시작했던

트위터 노출 계정이기도 하고,

부풀려진 소문으로 인해 고통받는 희생양이기도 하며

학생들이 소중한 것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구멍에 사는

여자 귀신이기도 하다.

의미를 확장하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강요로 인해

고통받는 우리 모두를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그런 애'로 낙인찍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비판과

내가 나임을 받아들여 자유로워지는 것의 가치가 아닐까?






06. <하수구 아이>

<하수구 아이>는 학교폭력을 가장 밀접하게

다루고 있고, 특히 '방관자'의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피디'로 불리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어가는 형식이 흥미로웠다.


<하수구 아이>뿐만 아니라 『스터디 위드 X』에서

가장 와닿았던 문장이다.

<하수구 아이>는 앤솔러지에 있는 소설 중에서

가장 오락성 낮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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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 디자인이 뭐예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입문자에게 필독서인 책.


'초보 디자이너에게 UI 디자인의 해답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맘에 들었다. 정말로 내게 나침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입문서답게 UI 디자인 기초 이론부터 다루고 있다. 피그마 설치법부터 기본이 되는 인터페이스, 피그마를 응용한 디자인 시스템 만들기까지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함께하며 툴을 배울 수 있다. 차근차근 따라하기만 하면 피그마의 핵심 기능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피그마 툴을 다루는 건 인터넷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익힐 수 있지만, 이 책만의 메리트는 8장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 툴 밖에서 협업하기' 챕터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업무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협업 시 디자인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등이 나와 있고, 정보를 얻기에 유용한 사이트도 추천해준다.

이 책은 피그마 다루는 법을 메인으로 하고 있지만,디자인에 필요한 개념 설명도 놓치지 않는다. 개념이나 기능을 알고 있어도 막상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골라 예시를 들어준다. 중간중간 나오는 '용어 사전'을 통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려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용어를 배울 수 있었다.


UI에 적합한 폰트부터 시작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실무에서 하는 일까지, 현역 디자이너가 조언해주듯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퀄리티 있는 답변을 찾기 어려운 질문도 대답해주는 느낌이다. 마치 프로덕트 디자인의 ㅍ도 모르는 초짜 옆에 베테랑 선배가 있는 기분?


이 책은 (1) UI 이론 알아보기 (2) 피그마와 친해지기 (3) 모바일 앱 서비스 기획, 구현하기 (4) 디자인 협업하기의 순서로 프로덕트 디자인 실무 과정을 겪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프로덕트 디자인을 막 입문하는 사람에게도 현재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친절한 개념 설명부터 툴 다루는 꿀팁까지 녹아 있는 책을 원한다면 <Do it! 프로덕트 디자인 입문 with 피그마>를 꼭 추천한다. 책 한 권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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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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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로부터 받은 블라인드 대본집 「나나」는 가제본이었다.

아직 출판되지 않은, 작가도 밝혀지지 않은 책!!

(「나나」의 작가는 으로 밝혀졌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밌는 소설이다😆

「나나」는 을 소재로 하고 있다.

창비출판사 청소년문학의 향이 풀풀 나는

따뜻하고 조금은 시린 내용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은 수리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은류는

선령에 의해 만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영혼을 조사(search one's soul)한다.


수리와 은류의 공통점은 가족과 남들에게

'멋진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수리와 은류는 자신의 육체에서 한 발짝 떨어져

그동안의 삶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들이 '나'의 몸과 떨어져 '나'를 되돌아보는 것은 결국 이다.


사람들이 흔히 너 자신을 찾으라고 하잖아요.

그럼, 그 전에 이미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뜻일까요?

52쪽


「나나」에서 가장 와닿는 문장이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는 과정'은 흔한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이길래 잃어버리는 걸까?


'나나'가 수리와 은류를 각자 말하는 줄 알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니 '나나'는 영혼과 육체를 뜻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다.

'나나'의 타이포 중 하나는 비어 있고 하나는 채워져 있다.

비어 있는 육체와 육체를 떠난 영혼을 상징하는 것 같다.



「나나」는 '영혼'을 잃고 사는 요즘의 우리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책에서는 영혼리스를 코믹한 설정으로 풀어냈지만,

실제로 우리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놓쳐가며

누군가가 정해 놓은 틀에 나를 끼워맞추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더 알고 싶게 해 준 이야기,

이희영 작가님의 


2021년 최고의 힐링 판타지 「나나」,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를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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