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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눈동자 안의 지옥: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라는 제목에 이끌려 창비의 서평단 활동에 참여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무했다. 어쩌면 모성에서 출발해 광기로 변하는 어떤 모호한 감정을 다룬 불안한 텍스트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대가 있어서인지, 가제본의 3분의 2정도 읽었을 때까지는 다소 지루했다. 내용의 주를 이루리라 예상했던 '모성'도 '광기'도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은 캐서린 조가 차분한 어조로 써내려간 입원 일지로 보일 만큼 평범했다. 그러나 이 덤덤한 문체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텍스트들이 캐서린 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솔직해지지 않고서는, 스스로와의 투쟁을 하지 않고서는 존재 자체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 어떤 것.
캐서린 조는 산후정신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스스로도 이렇게 썼다. '내 정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캐서린 조가 기록을 시작한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산후정신증을, 일단은 현재의 자신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아까 말했듯 캐서린 조는 상당히 차분한 태도로 일관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과거의 서술과 현재의 서술 시제가 의도적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캐서린에게 산후정신증은 현재고, 지난 날들은 과거다. 어찌됐건 그는 정체성을 잃는 와중에서 자신의 삶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정지되어 있는 순간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으면서.
차분한 텍스트 속에 도사리고 있던 모성과 광기는 가제본의 후반부로 갈수록 모습을 드러낸다. 캐서린이 제임스를 만났을 때, 캐서린은 케이토의 이름을 '잊고 있었다. 내게 그 이름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임신의 과정에서 '나'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자신을 '운반자'라거나 '아기를 위해 존재하는, 하라는 대로 하는 포유동물'처럼 느끼기도 한다. 캐서린의 감정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생명의 잉태와 출산의 과정은 신비롭고 신성한 것, 침해될 수 없는 고결함 비슷한 것이라고 학습해왔다. 그러나 「네 눈동자 안의 지옥」에서 마주하는 광기는 이런 것들과 사뭇 거리가 있다. 캐서린은 자신이 더 이상 '독립체'가 아님을 안다. 케이토의 존재가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알지만, 캐서린은 의심의 여지 없이 케이토를 사랑한다. 가제본의 후반부는 정체성의 혼란으로부터 오는 광기와 케이토를 향한 모성이 교차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숭고한 것으로만 포장되었던 모성 옆에 '광기'라는 이름의 '나'를 내세우면서, 글은 새로운 장을 펼친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감춰졌던 이야기들을 향해.
*본 서평은 창비 「네 눈동자 안의 지옥: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서평단에 제공된 가제본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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