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0
로이스 로리 지음,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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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자 -로리스 로리

늘 같음 상태인 마을이 있다. 추위, 더위, 배고픔, 고통, 전쟁도 없다. 맑음 외에는 눈도 비도 없다. 동물, 심지어는 음악, 색채, 외로움, 고독, 어떤 선택도, 심지어는 사랑도, 향유할 수 있는 그 어떤 문화도, 과거에 대한 기억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모든게 그저 (국가에서) 주어질 뿐이다. 하지만 인간이 기본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집, 가구, 음식, 옷 등은 모두 배급된다.

직업(직위)은 원로위원회에서 관찰하여 12살이 되면 적성에 따라 정해준다. 항소 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은 따른다. 여러가지 직위 중 가장 특별한 직위는 기억보유자. 기억전달자로부터 전 인류의 기억을 전달받게 된다.

연애감정이란 있을 수 없고 결혼도 자신의 의사나 선택이 아니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어울릴만한 사람을 정해서 함께 살 수 있도록 정해준다. 자녀를 출산하는게 아니라 출산자는 따로 직업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들, 딸 한 명씩을 배정받는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몸무게가 적은 아이는 임무해제되고, 노인이 되면 노인들의 집으로 분류되어 언젠가는 임무해제된다. 또한 타인에게 큰 피해가 가는 범죄를 3번 범하면 임무해제된다. 눈을 맞는 느낌. 햇볕을 쬐는 느낌, 썰매를 타는 즐거움, 평안함, 행복함, 가족과 함께하는 따듯함. 기억보유자로 선정된 조너스는 이런 것들이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 감정뿐만이 아니라 전쟁, 살육 등등 부정적 감정을 경험하면서 육체적 고통을 힘겹게 체험한다. ‘기억보유자에게 전달된 기억은 기억 전달자에게는 지워져 버린다. 그러므로 기억 보유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인류 중 그 누구도 기억을 보유 할 수 없게 되며 만약 조너스에게 이미 전달된 기억을 거부한다면 이 기억들은 사람들에게 나눠져버리고 늘 같음 상태가 파괴 될 것이기에 원로위원회에서는 철저하게 통제한다.

하지만 기억을 전달받은 조너스는 다른 사람들도 그 기억들을 나눠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탈출을 꿈꾼다. 그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조너스에게 내장된 기억은 지워지고 사람들에게 전해지도록 시스템화 되어있다.

임무해제란 즉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된 조너스는 몸무게가 적어서 곧 임무해제가 예정되어 있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간 본 적이 없는 다른 세계로 탈출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 추위, 육체의 고통 등을 느끼게 되지만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색채가 있고, 감정이 있고, 음악이 있는 곳이다. 결국 매우 힘들게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인간을 계획적으로 생산하고 통제하는 내용에서 베르베르의 제3인류가 연상된다.

체제순응형에게는 늘 같음 상태가 적합할까? 하지만 체제거부형이나 예술가기질형에게는 질식할 공간이다. 감정없이 생명만 가능한 곳, 우성의 형질만이 살아 남겨져서 수치에 도달하지 못한 아이나 반항적인 성인,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인 등은 즉시 임무해제되는 곳은 끔찍하다.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어쩐지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은 없는 상상이기도하다. 가끔은 상상하기도 했다.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아닌 위아래 30% 정도는 제거된 평균율로 안정된 40%의 사회를... 하지만 그 통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극단의 허구를 통해 알았다.

 

기성세대는 결국 퇴화하는 기억전달자이고, 아이들은 진화하는 기억보유자이지 않을까? 자신과 타자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을 전수하고 인류의 바람직한 아픔이든 기쁨이든 삶의 경험들을 고스란히 전수해주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여서 보유해야 할 것 인지, 기성세대로서의 신중한 자문을 던져보게 한다. ‘전달자’, 충격 속에서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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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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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위리엄 폴 영.

난 종교는 없다. 하지만 신앙은 있다. 신앙의 사전적 정의가 믿고 받드는 마음이라면 나의 신앙의 대상이 신은 아니지만 올곧은 삶의 태도’, ‘선을 추구하는 가치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신뢰에 기반에 인간관계등이 나의 신앙이다. 다소 종교에 배타적인 나로선 종교적인 내용이라고 해서 사전에 부담감이 사알짝, 느껴졌다. 그래도 소설인지라 일단 펼쳤다.

이 책은 놀랍게도 6자녀를 둔 아빠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쓴 책이란다(와우, 전문 작가도 아니고, 종교지도자도 아닌 평범한-삶의 질곡이 심했던- 아빠가 자녀들에게 선물하려고 몇 쪽의 동화가 아닌 420여 쪽의 양질의 장편 소설을 쓰다니!)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복사본 몇 부를 돌린 것이 소문이 나서 결국 출판을 하게 되었고 49주 동안 뉴욕타임지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단다.

읽고 나니 신에 대한 착오적인 편견을 깰 수 있고, 종교의 편집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하지만 밀양’ ‘모세영화를 거부했던 종교인이라면 이 책도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성경에 대한 상식이나 이해를 기반하고 있었다면 은혜가 깊었을까? 오히려 무지했기에 감동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 소설 속 주인공 메켄지는 다섯 아이를 둔 다정다감한 아빠. 캠핑을 갔다가 막내 딸이 유괴살인 된 후 삶은 엉망이 되어 버리고 신을 원망, 의심, 거부한다.

3년 반 후, 딸이 살해되었던 장소였던 오두막으로 파파의 초대장을 받는다. 살인자의 장난인지 진짜 파파(하나님)의 부름인지 반신반의하며 찾아간 오두막에서 하나님, 예수. 엘루시아를 만나 삼위일체면서도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신들과 23일을 지내게 된다(결과적으로는 지나치게 생생한 꿈이었지만)

딸의 죽음과 관련하여 원망과 분노에 찬 자신을 신에게 내보이며 반항? 할 때마다 신들이 답을 하는 형식이다. 신들의 따듯한 설명으로 신의 의미와 역할, 종교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재고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러면서 비로서 죽은 딸아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살인자에 대한 용서까지가 가능하게 된다.

 평소에 종교에 대한 생각은, 인간을 사랑한다면, 진정한 평화를 수호한다면, 하나님은 왜 세월호 사건이나 숱한 전쟁피해도 사전예방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어렴풋이 해소 할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신들의 설명이 어떤 계시라기 보다는 인간관계, 혹은 자기반성의 묵시록으로 해석되었는데도 깊은 울림들이 많았다.

아마도 종교적인 갈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시원한 소나기같은 갈증해소가 될수 있을 듯도 하다.


상당히 많은 밑줄긋기다
-하나님은 영이며 남도 여도 아니라고 믿었지만 그래도 당연히 백인 남자의 모습으로 받아들였을까?
영혼은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치유된다.
gilt(금박)테두리로 장식된 값비싼 책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이라면 어쩌면 그것은 guilt(죄)의 테투리 였던가?
나(신)만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자유는 결코 강요될 수 없는 것.
새들은 대부분 날 수 있도록 창조되었으나 땅에 앉아있는 것은 날 수 있는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지 반대가 아니다.
사람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는데 사랑받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그게 바로 당신의 삶을 제한 하는 것.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것은 새의 날개를 잘라서 날아다니는 능력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이해해보려고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모습들을 모아서 최대한도까지투영하고, 자신들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선함을 인수분해 한 후에 그 대단치도 않은 결과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사랑은 한계가 아니라 비상이다. 내가 곧 사랑이다.
자신이 원할 때 자기본성의 한계 안에서만 사랑할 수 있는 신은 재양이다. 따듯하고 단순하고 친근한 진실이 거룩함이다.
존재는 겉모습에 불과한 외모를 항상 초월한다.
나는 나를 화나게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한다. 나에게 화란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다.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벌을 줄 필요가 없다. 죄는 그 자체가 벌이기 때문에 안에서부터 당신을 집어 삼킨다. 내 목적은 죄를 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유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밀양이 연상되었고, 이 논리에 의하면 비로소 이해가 갔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추구하기 때문에 군림할 필요가 없다. 서열도 의미가 없고, 정치 사업 결혼 등 인간의 모든 제도가 계급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서열이 정해지면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하고 결국에는 일종의 명령 계통이 사슬이나 질서체계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관계가 증진되기 보다는 퐈괴되는 것. 권련과 분리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다. 사슬은 아무리 황금일지라도 사슬이다.
사람들은 관계를 버리고 독립을 택하면서 서로 위험한 존재다 되었다. 타인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조종하거나 복종시켜야 할 존재가 되는 것.
당신들이 생각하는 권위란, 강한 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진정 서로에게 관심 갖는 법을 배웠다면 위계질서가 필요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너무 헤매고 상처도 많이 입은 나머지 위계질서없이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는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과도 위계질서 안에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조의 최고의 영광으로서 당신은 신의 형태대로 만들어졌고 어떤 체계에도 구애받지 않으면서 자신과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유로이 존재할 수 있다.
고토와 아픔을 근절하는 대신 받아들이는 데에는 수백만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들 대부분은 각자의 이야기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신은 악이 아니예요. 당신들이야말로 관계속에서 두려움과 고통, 권력, 권리를 쉽게 받아들이죠. 당신의 선택은 내 목적보다 강하지 못해. 나는 당신의 모든 선택을 이용해서 궁극의 선을 이루고 가장 사랑스러운 결과를 얻겠다.
망가진 인간들은 겈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지만 그런 것에선 만족도 자유도 얻을 수 없어요. 그들은 권력이나 권력이 제공하는 안정의 환각에 중독되어 있다.
신뢰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관게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무신론자들에게 보내는 충고처럼 들린다)
사랑은 결국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사랑받으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 인간들에게는 쉬운 개념이 아니다 함께 나누는데 인색하니까 어떤 의무도 없이 자유로이 사랑하면 된다.
거짓에는 무한한 조합이 있지만, 진실의 존재 방식은 하나 뿐이다.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 있을 때 더욱 더 철저하게 기쁜에 넘쳐 악을 행한다.(볼레즈 파스칼)
은혜가 꼭 고통의 도움을 받아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 있는 곳에서 여러 가지 색채의 은혜가 발견되는 것일 뿐.
정직이라는 위험을 택하길.
하나님은 동사다. 성경에는 책임이라는 단어가 없다.
기대라는 말에는 미래나 결과를 모르면서 바라는 결과를 얻기위해 행동을 통제하려 한다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은 기대를 통해 행동을 통제하려고 애쓴다.
우선권을 갖고 살면 모든 것을 위계질서나 피라미드로 보게 된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여 어느 정도여야 충분할까, 여러 가치를 나열한 목록 중에서 첫 번째가 되고 싶은게 아니라 모든 것의 중심이 되고 싶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보다 모빌의 한가운데. 친구 가족, 생각, 행동 등 삶의 모든 것이 나와 연계되어 존재의 춤 안에서 바람과 같이 경계 없이 움직이고 싶다.
율법은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고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게한다. 타인들보다 자신이 더 높은 기준에 맞춰 산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네가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그를 신에게 놓아주고 나로 하여금 그를 속죄하게 한다는 의미다. 용서는 잊는다는 것과는 달리 용서는 다른 사람의 목을 놓아주는 것. 용서란 너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야. 또한 완전히 터놓고 사랑할 수 있는 너의 능력과 기쁨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증오보다는 사랑과 용서에서 더욱 큰 힘을 갖는 본성을 찾으라.
너의 죄를 상기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율법은 예수로 인해 소멸되었다.
잘못된 일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반응이지만 분노와 고통과 상실감 때문에 용서하지 못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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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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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전작으로 이 작가가 쓴 여덟단어를 읽었다. 짧고 강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그런가 문장을 연마하는 솜씨가 보통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여덟단어는 빌려봤는데, 이 책은 구입했다. 어쩐지 그래야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책 서문을 읽어보니, “말하자면 나의 도끼였던 책들을 독자 제현에게 팔아보고자 하는 의도, 결국, 나는 광고인이니까라고 고해 놓았다. 나 역시 그 광고에 말려든건가?

이 책을 읽어보기 오래 전에 제목을 스쳤을 때, 이 사람은 책으로 장작을 패나... 농치고 웃으면서도 괜히 오싹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게 책이구나.

이 책은 독서강론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래서 문체가 부드럽고 대화식이다. 독서강론의 시작은 딸아이가 고교생일 때 논술과외 비용이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는 소리에 미쳤군, 하며 딸 친구들을 불러 시작한게 시초란다. 능력되는 위대한 아빠군. (대학생 된 딸이 콩가루 집안 어쩌구 하는 책을 냈다는 광고를 봤다. 난 왜 이런 논외의 이야기가 더 재밌는지...ㅋㅋㅋ)

제목이 너무나 멋진 목차만으로도 논하려는 작품을 짐작할 수 있나 어디 보자.

1강 시작은 울림이다.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3강 알랭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4강 고은의 낭만에 취하다

5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

6깅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7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리나

8강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다

목차만으로 작품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내용은 광대하여 짐작을 초월한다.

5강에서 소개한 책의 종류는, 행복의 충격,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그리스인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지중해 오디세이, 이방인, 지상의 양식, , 말테의 수기까지 10편이다. 8강에서도 10, 그래서 이 책 한권에서 다뤄지는 책은 모두 42권이다. !!!

작가의 방대한 독서량 뿐만 아니라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1년에 30-40편 정도의 독서를 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 읽는단다. 넓게 파기가 아니라 깊게 파기가 전문인가 보다. (나도 양은 어찌 따라갈 수도 있겠는데, 질을 따라가기는 어불성설이로구만. ......)

보통의 서평은 책 한권을 가지고 논하는데 이건 형식이 조금은 다르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 전반을 꿰뚫어 통찰을 했는가 하면, 여러 작가의 작품을 유사성에 따라 연계지어 놓거나, 읽은 이의 가슴에 맺혀있는 문장을 천천히 반추하여. 자신의 프리즘을 통하여 다시 빛을 입혀 배설해? 놓았다

이를테면, 판화가 이철수의 책을 소개하며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 벼와 한 농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 ‘이라 부르기 미안하다. <이쁘기만 한데...> 라는 구절을 써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유추되는 다른 문장이나 책을 슬그머니 끌어다 놓는 식이다.

직업적인 이유로 책을 많이 접한다는데, 나도 직업적인 이유로 동화를 겁나게 접하는디...(내 도 마, 언젠가 동화를 종횡무진, 총 망라한 서평을 써보리라! )

다행하게도 읽은 책도 있고, 불행하게도 안 읽는 책도 있다. 더 불행한 것은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내용도 많다는 것이다. ,

나의 부족함으로는 서평을 평할 능력이 안되니 함묵하겠지만 미려한 문장으로, 철학적 재해석이 가능하고, 유사한 작품을 얼기설기 엮는 손놀림까지 그 솜씨가 참으로 현란하여, 광고인이라는 작가의 노골적인 의도대로 소개된 책들을 사서 읽어봐야만 할 것만 같은 유혹의 망에 제대로 걸려든다.

그래서, ‘책은 도끼다는 나의 얼어버린 바다를 포획하는 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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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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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미 비포 유와 같은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관계소설이다. 연예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단순한 이성관계가 아니기에......

잠시도 호흡기를 뗄 수 없는 말기암을 앓고 있는 16세 소녀 헤이즐과 근육암으로 한 쪽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단 17세 소년 거스가 인생이라는 한시적인 시간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과 주변인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가고 고통스럽게 마무리 하는지 잘 나타나있다.

상실의 시간들(최지월)에서처럼 밤새 안녕하지 못하고 갑자기 죽은이의 삶은 남은 이들이 미숙하게 임의대로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두 주인공들은 하나 하나 죽음을 준비하고 대비한다.

처음엔 거스의 여자친구가 암으로 죽었음을 안 헤이즐은 거스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자신이 죽으면 거스에게 또 상실감을 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이즐과 거스는 서로에게 시간이 조금밖에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특하게도 헤이즐이 좋아하는 소설 장엄한 고뇌라는 책이 발화점이 되어 점차 가까워진다. 비참해하지도, 좌절하지도, 무엇보다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 책을 거스에게 권하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스토리가 마무리가 되지 않고 끝나는 내용이어서 너무나 궁금하게 생각하며 속편은 나오지 않는지, 아니면 그 다음 내용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너무너무 궁금해 한다. 작가는 유일하게 그 작품만을 저작하고는 은둔생활에 들어가버려서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거스는 헤이즐을 위해 기어이 작가를 찾아내고,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를 통해(와우 소설이라 가능한가?) 그 네덜란드로 작가를 방문해서 직접 답을 듣는 이벤트를 준비한다.

헤이즐은 여행 준비중에 악화되어 집중치료소에서 치료를 받았고, 거스는 여행 직전에 상태가 재발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거절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다. 가서보니 작가 반 호텐은 말기암 환자보다 더 상태가 안좋은 알콜중독자이고 괴짜이다. 기대했던 답을 듣지도 못하고 오히려 상처만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행은 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생의 선물이 된다.

여행 후 거스는 수순처럼 악화되고 헤이즐에게 추도사를 부탁하고 예행연습 후 8일만에 죽는다. 헤이즐은 큰 상실에 빠지지만, 거스가 장엄한 고뇌의 후속편을 반 호텐을 통해 전해주도록 준비했다는 감동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책임져야 할 죽음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야.(왜 채식을 하냐는 질문에대한 헤이즐의 답변. 대단하다, 난 나의 채식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못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이렇게 답변하면 될 것 같다.)

*건강한 날 며칠을 위해서라면 나의 아픈 날 전부를 내놓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헤이즐)

그가 읽는 동한 나는 잠이 드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에 빠졌다. 천천히, 그러다가 갑작스럽게...(함께 여행가는 비행기에서 잠드는 거스를 보며.16살 인생이 사랑을 어찌 이렇게 표현 할 수 있을까)

*내가 내 목숨을 잃는 대가로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게 두려운거지. 위대한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최소한 위대한 선을 위해서 죽어야하지 않겠어? 난 내 삶도 죽음도 그렇게 의미있지 않을까 봐 두려워.(고통이 심해지는 날들 속에서 거스가 헤이즐에게)

*넌 나에게 한정된 나날 속에서 영원을 줬고 난 거기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거스의 추도사를 예행연습하면서, 헤이즐)

 

사실,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간다. (올해 92세이신 울 아버지도 결국은 지금까지, 앞으로 남은만큼 시한부가 아니던가.)

시간을 더 많이 가진 자의 오만이 아니라, 시한부 인생이 꼭 처참하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내 삶이 시한부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보장하랴, 오늘 아침에도 계단에서 미끄러져 하마터먼! 횡사할 수도 있었는데!!! )

단지, 암이라든가 극단 적인 병을 갖게된 사람들은 시한이 조금 가깝다는 것을 알기에 시간이 좀더 밀도있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멀쩡하게 인생의 주변부에 알짱거리다가 예고도 없이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생의 마감을 준비하고 대비한다는 암적 잇점(작가의 표현임)이 있을 수 있다.

유한한 생의 한가운데서도 유머를 잃지않고, 생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청소년들의 진지함은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의 청춘들보다 훨씬 의젓하다.(물론 의젓함이 생을 구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한시적인 시간 안에서 운용할 수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그 안에 내재된 관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나 보다. ‘안녕 헤이즐광고에 찍힌 인물만으로도 영화의 몰입도가 있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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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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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제목에서 뭔가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마치 끝까지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의미로 새겨져서 연말연시의 새로운 각오와 어울릴것만 같아서 고른 책이다.

3명의 화자가 있다.

미라 : 남편이 사고로 죽자 삶의 의미와 의욕을 부려버린 엄마 애자를대신해 동생 나나의 언니로 삶을 지나온 여자.

나나 : 아빠가 사고로 죽자 자식부양의 의미도 놓아버려 언니 미라와 단짝같은 생을 함께하나 임신을 하게된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른 남자친구와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

나기 : 미라, 나나 자매와 유년시절 이상항 형태의 지하방 이웃으로 함께 살았던 인연으로 미라의 유일한 친구이자 나나가 아이 아빠가 되길 바랬던 남자. 본인은 정작 동성친구를 좋아해 평생을 연애 한번 하지 않은 평범한 요리사.

3명이서 유년시절부터 성년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억에 지워지지 않았거나 기억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뱉는 형식인데 굳이 상호연과성이 없다.

자주 지루하고, 잠시 반짝이다 결국을 실망으로 덮게된다. 이야기 말미에 계속해보겠습니다. 하며 내용을 이어가는데 마지막 끝 문장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쓰고 계속하지 않고 끝난다.

물론 인간의 삶이란 어떠한 방식이나 어떠한 이유에서도 계속해보겠습니다 라는 의지를 전하고자 라는 의미로 전달되긴 했다.

끝장의 문장이 더구나 마음에 차올랐다.

인간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데 북디렉터들도 느낌은 비슷한지 표지 홍보용으로 카피되어 있다. 나 또한 하찮은이라 그 문장이 이슬비처럼 가슴으로 가라앉았다. 고결하지도 위대하지도 못하고 하찮지만 오늘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 읽고 찾아보니 이 풋풋한 작가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다 읽고 난 후 지나친 존재의 가벼움이 느껴져서 검색해보았더니 33세의 전도유망한 작가다. ‘감기의 윤성희 작가나 의 주이란 작가처럼 통통튀는 물방울 같은 제기발랄함은 있으나 소설은 애우 가볍다. (30세 이전은 어쩔지 모르나 40세 이후에겐 비추)

몇 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해 놓은 듯, 신변잡기를 벌려놓은 듯, 말꼬리잡기 놀이 정도랄까.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벌써 몇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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