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소설 : 하우스프라우
독일어로 가정주부, 기혼 여성을 뜻한다는 '하우스프라우'. 스위스인과 결혼해 그곳에서 사는 미국인 안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담한 성(性) 묘사와 섬세한 심리 묘사가 교차하는 소설, 더 우울하고, 더 섹시해진 현대판 안나 카레니나라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기대가 많이 되었다. 안나 카레니나에 보바리 부인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섞은 작품이라니 과연 어떻길래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운전면허증도 없어 자신의 두 다리나 대중교통에 삶을 맞추는 여자. 그리고 은행가 남편을 두고 있음에도 은행계좌 하나 없는 여자. 안나는 세상에서 제일 수동적인 여자다. 도전을 하지 않고 무력함을 느낀 채 주변 상황에 흘러가듯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대담할 수 있는 무기력하고 우울한 여인.
안나는 섹스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았다. 필요하면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섹스와 그녀의 관계는 그녀의 수동성과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고 싶다는 난공불락의 욕망에서 우러난 난해한 동반자 관계였다. 그리고 원해진다는 것에 대한 욕망. 그녀는 누군가에게 원해지고 싶었다. - p. 62
그녀는 정기적으로 상담을 하는 전문의가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남편보다도 많이 알고 있는 의사는 그녀에게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삶의 주체가 되어 성공적인 경험을 해보라는 조언을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무력함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독일어 수업을 시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작은 비밀이 생기게 된다. 그녀는 독일어 수업을 하면서 배우는 문법들로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되고, 그 것은 일탈을 하게 하는 통로가 된다.
전문의와의 정기적인 상담, 독일어 수업, 그리고 안나의 일상의 이야기는 각각의 꼭지점을 만들며 서로 이어져 나간다. 그렇게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안나는 점차 파국을 향해 달려나가게 된다. 굉장히 대담한 성관계에 대한 묘사가 많지만 야하다기보다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안나에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외롭지 않게 도와주는 행위는 그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을 지 몰라도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름길로 이어진다. 안나의 결말이 숨막히게 만들었다. 나까지 공허와 우울에 빠지게 만들 것 같은 구멍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