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 : 길 위의 토요일
이 책 '길 위의 토요일'은 저자의 자전적인 성장 소설이다. 불행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 그리고 어느 날 보게 된 환영과 환각들, 알게 된 어머니 쪽의 병력, 그리고 저자인 자신의 경험들. 그림을 그렸다던 저자는 이번엔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불운한 정신을 지니고 태어나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의 고백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책은 누군가에게 고백을 하는 듯한 어조로 조곤조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간혹 조용한 밤을 보낼 수 있을 때조차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저 습관대로 잠을 자는 척 누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주는 고요함에 숨을 죽인 채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곤 했지요.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맞이할 수 있는 새벽, 아버지가 내지르는 소리도 어머니의 다급한 외침도 없는 완전한 혼자로서 누릴 수 있는 그 조용한 새벽은 제게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외로움이 제게 어떠한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들지 못해 괴로움에 떠는 제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잠시나마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 p. 123
화자는 자신이 예전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정신병자'. 그리고 '정신병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사연을 알리며 자신이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청자가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도록 자신이 정신병력을 가지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뒤늦게 밝힌다. 독자 또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부턴가 제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 없이 킁킁거리는 심장과 잦은 두통, 어지럼증이 그 증상이었지요. 처음에는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어머니에게 저까지 짐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단순한 증상이었던 두근거림이 점차 심해져 심장 부위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누군가 기다란 창으로 제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극심한 통증 때문에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 앉기도 했습니다. - p. 127
눈을 떠보니 정신병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방황하며 이를 구분하는 잣대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다. 도입부에서 갑작스러운 주사로 인한 약물 투여로 몽롱해져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묘사가 나온다. 예전에 정신병원 수감자들의 이야기들 중 합법적 납치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글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집을 드나들며 보내는 밤은 가장 중요한 일과로 자리해 갔습니다. 마치 잠에서 깼을 때 밀려오는 오랜 숙취처럼 삶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었지요. 하지만 학교 안에서만큼은 학교 밖 생활과 철저히 구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업도 게을리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제가 노력하면 할수록, 철저하게 구분 지어 놓고자 했던 삶들로 인하여 취하는 날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외로운 나비들을 외면하고 홀로 날려 보내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저 자신은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갔습니다. 집 안에서의 나, 학교 안에서의 나, 학교 밖에서의 나, 이상 속에서의 나, 현실 속에서의 나, 태양이 떠 있을 때의 나, 태양이 지고 났을 때의 나...저 자신이 각기 다른 형태로 분리되어 어느 것이 진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졌습니다. 그 무렵, 그 정신없는 와중에 제 또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게도 처음으로, 비록 몇 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제게도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 p. 144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현재까지의 상황을 현실로 또는 과거로 돌아가며 서술하고 있는 이 작품은 저자가 매일 쓴 일기와 편지, 병원에서 한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쓴 명상록과 자서전을 바탕으로 집필한 저서라고 한다. 때문에 정신병원에서의 생활이나 감정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신병자라고 분류된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자신에게 고독과 외로움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관한 내용 등을 보여준다.
그때 즈음부터였을 것입니다. 캄캄한 밤이 주는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말입니다. 학원을 마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기껏해야 걸어서 30분 정도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제게 유일하게 허락된 혼자인 시간이었습니다. 밤의 어둠이 주는 적막 그리고 찾아오는 외로움. 그것은 달과 같아서 홀로 빛나도 쓸쓸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자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온전한 정신으로 숨 쉴 수 있었고, 세상은 참으로 온전한 것이 아닐 수 없었지요. 들리지 않았던 고요함이 제 귓가에서 노래 불렀고, 만질 수 없었던 평온함을 가득 품을 수 있었습니다. 멀리 반짝이는 우주를 내다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진 듯했습니다. 그러자 왜 더 일찍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괴로워했던걸까. 어째서 진정한 외로움은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후회가 되더군요. 그래도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더 이상은 그럴 일이 없을 것이기에 괜찮았습니다. 밤이 계속되는 한 저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요. - p. 166
책은 자신의 감정과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 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모호하다. 다만 화자는 끊임없이 위안을 찾아 헤멘다. 언제는 사랑이었고 언제는 고요함이었고 언젠가는 밤이었던 위안은 끝부분에는 '그녀'라는 존재로 또 변모한다. 유일하게 그를 인정해주는 희망이자 사랑으로. 자전소설임이 놀라울 정도로 절절한 고백이고 그래서 읽기 힘든 이야기. 다 읽고나자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