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야 다오스타
정선엽 지음 / 노르웨이숲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한국
소설 : 비야 다오스타
천 년 전의 십자군 전쟁[CRUSADES]을 다룬 소설이라는
'비야 다오스타'. 이미 많은 작품들이 이 소재로 인해 탄생했는데 어떤 얘기를 더 하고 싶기에 이 소재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표지에는 눈을 가린 어떤 인물이 있고, 그 인물 위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듯하다. 누군가의 눈을 가린 까닭이 무엇일까. 눈을 가려 사상이
편협한 이를 다룬 이야기일까. 아니면 눈을 가린 천이 풀리고 있는 중인 걸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13년 전, 아직 부제시절이었을 때에, 사피에르는 로레아라는 이름의 한 처녀와 결혼했다.
그때만하여도 사제가 아내를 맞이하는 일은 장려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불법은 아니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성직자의 결혼무효화를
언급하면서 교회법으로 제정했던 건, 사피에르와 로레아의 결혼 후 2년이 지나서였다. 사제들의 결혼을 막는 교회법이 제정되자 사피에르와 로레아는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결혼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아야 했다. - p. 12
저자인 정선엽은 원래 기독교 신학을 가르치던 교수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조직 신학에 관한 학문을. 그는 그러다가 폐쇄적인 기독교 사회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의 주인공 비야
다오스타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주인공의 고뇌와 괴로움, 의심과 회의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 것은 그대로 책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은 그저 배경으로 발탁되어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고 중요한 것은 계속되는 의문과 고뇌였다.
무엇을 위해 일어났습니까? 무엇을 위해 떠나는 길입니까? 그들을 대적하여 죽이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주님의 충실한 종일뿐입니다. 그러나 십 년 전 교황 성하가 새롭게
제정하신 법은 분명코 주님의 뜻과는 상반됩니다. 성서에도 적혀있듯이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주님께서 그리 창조하신 까닭입니다. 그런데 어찌
사제만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까? 결혼을 함이 어찌하여 타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혼을 했다고 하여 파문을 당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 p. 46
결혼 무효화가 교회법으로 제정된다. 그 법은 교회법 개정
이전의 과거의 일에까지 소급적용되어 신실한 사제였던 이가 교회법으로 인해 불법을 저지른 자가 되었다. 그와 같이 결혼한 사제들은 교회로부터
축출당한다. 신실한 성직자이지만 한 가정의 아버지이기도 한 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로마로 피신하고, 또 가족들과 헤어진다. 모두 교회법으로
인한 일이었다. 그는 주님의 뜻과 교회법의 괴리에 대해 고뇌한다.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붙들어 주시리라. - p. 535
자녀 중 아들 비야는 성전 기사단으로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 그리고 비야 또한 전쟁의 의미에 대해, '왜'에 대한 생각을 하고 회의를 품게 된다. 진정한 주님의 뜻과 교회의 뜻의 괴리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을 하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펼쳐진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 시대 상황을 반영한 인물들의 내면적 고찰로
적합한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결말부의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야기'을 기대하고 읽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그 시대 인물의 고뇌'가 작품의 전반적인 이야기라고 알고 읽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무리. 종교의 폐쇄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국사회와
많이 닮아있기에 택한 듯한 시대배경도 인상적이었다. 적지 않은 페이지가 금세 읽히는 속도감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