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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스페인 역사추리 소설 : 시체 읽는 남자
굉장히 흥미로운 소설을 읽었다. 바로 인류 최초의 법의학자 '송자'에 관한 이야기! 13세기 송나라에서 가진 것 없이 태어난 그는 온갖 시기 속에서 여러 번의 직책 강등을 경험하고 마침내 중국 최고의 명판관으로 이름을 남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흥미롭게도 중국인이 아닌 바로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리도! 그는 '번역가'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이 '시체 읽는 남자'를 두 번째 소설로 지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체 읽는 남자'는 그에게 2012년 사라고사 국제 역사소설상과 201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최고의 외국 역사소설에 주어지는 그리프 누아르상, 2015년 프랑스 렉퇴르 셀렉시옹상을 수상하게 해 주는 영예를 안겨준다.
소설 소재를 찾던 그에게 우연히 다가온 뉴델리에서 개최되는 법의학과 독물학 학술총회 참석기회! 그는 그 학술총회에 참가할 수는 없었지만 학술총회의 발표논문집을 받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송자를 접하게 된다. 그의 독특한 생애는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줬고, 그는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 그렇게 얻어낸 겨우 서른 개의 문단.
그의 인생에는 밤이 드리워져, 낮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 p. 137
운하의 물은 그에게 속삭였다. 지금 물로 뛰어드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자는 물에서 눈을 떼고 단호히 일어났다. 그게 그의 운명일지라도, 적어도 그걸 피하기 위해서 싸울 작정이었다. - p. 188
그 서른 개의 문단에서 발전되어 나온 작품이니만큼 픽션이 대부분인 역사소설이다. 당시의 수총 등의 배경들을 집어 넣어 참 매력적인 소설이 탄생했다. 이 작품에서의 송자는 참 가진 것 없이 태어나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세상에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는 어린 여동생을 참으로 아끼고, 중국 시대 장유유서 등의 원리원칙을 참 잘 지키는 청년으로 총명하고 분별있게 자라난다.
시체를 많이 다룰수록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들은 그가 확인해주는 것을 마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배우면 배울수록, 자기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 p. 221
그는 여러 불운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시체를 다루는 일을 하게 된다. 젊었을 때 펭판관에게서 배운 지식과 그의 경험 등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돈을 모은다. 그러던 중 밍교수와 만나게 된다. 밍교수는 그의 뛰어난 실력을 눈여겨보고, 그를 학원에 추천하려고 한다. 하지만 셋째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것을 일 순위로 삼고 있던 자는 좋은 기회를 포기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점쟁이의 옹졸한 마음 때문에 필요한 약을 얻을 수 없어 결국 여동생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순식간의 삶의 목표를 잃게 된 자는 거칠 것이 없다. 그는 하던 일을 때려치고 결국 밍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밍학원에서 그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공부를 해나간다. 그가 관심 있는 분야는 의학이었는데, 미신과 유교적 문화 때문에 해부는 물론이고 의술마저 터부시되던 시대였기에 밍교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빈축을 산다. 그래서 그는 '시체판독가'라는 묘한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던 중, 황궁에서 심각한 사건이 일어난다. 굉장히 잔혹하게 살해된 몇 구의 시체! 그는 밍교수의 추천을 받아 그 사건에 투입된다.
머릿속에서는 무언가가 그를 천천히 갉아먹고 있었다. 그를 절대로 마음 편히 놔두지 않을 고통이었다. 그것이 바로 주목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p. 470
그는 그 사건으로 과거에 자신이 아버지처럼 생각하던 펭판관을 다시 만나게 된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이기에 밍교수와 펭판관을 위하며 수사를 이어가던 중, 펭판관의 아내인 후디에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빠지게 되는데.. 게다가 사건은 밝혀갈수록 점점 더 미궁속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누가 과연 살인자인가?
언젠가 후디에가 제게 말하길, 펭은 사람이 죽는 방법을 수없이 많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건 사실일지 모릅니다. 아마도 죽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확신하는 건, 사는 방법은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p. 567
아버지는 횡령꾼, 하나뿐인 형은 폭군에 살인자. 그러한 가족력으로 과거를 볼 증명서도 떼지 못해 시체 관련 일을 하던 송자. 그가 뛰어난 실력과 명민함으로 점점 인정받아가는 모습이 멋지다. 가족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중간에 창녀들과 후디에에게 홀려 일을 그르치는 것도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뉘우치며 잘못을 되돌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13세기였기에 지식이 발달하지 않아 미신을 믿는 사회. 누군가 죽으면 저주라고 말하고, 자백을 위한 고문이 가능하며 남성이 여성의 시체를 해부하는 것 또한 용납되지 않았던 시절. 업신여김과 천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결국 진실을 밝혀내는 데 성공한다. 이 소설은 픽션이지만 실존인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기에 역사상 최초의 법의학서인 '세원집록'또한 실존하는 저서이다. 미신과 유교적 문화 속에서 과학적 수사 방법과 검시법을 체계화한 '세원집록'을 집필해낸 위대한 명판관! 그를 소재로 한 이 소설, 정말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