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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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다. 다시 누군가의 이름을 구걸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 p. 19


이번에 읽은 건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영 작가의 신작 이름 없는 사람들인데요. 아버지는 팔아넘기고 새아버지는 '나'에게 살인을 시킨다는 제가 즐겨보는 모 크리에이터의 컨텐츠를 보고 흥미를 느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소개글만 봤을 때는 속도감 있고 스릴있는 전개가 이어질거라고 상상을 했었는데요. 생각보다 굉장히 감정없는 서술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더라구요.


재는 아직 파란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0'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의 빚이 이렇게 되는 순간 너는 자유다. 그때 너는 그 누구의 아들도 아니란다. 알겠니?


'재'에게 빚진 아버지. 도망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 덕분인지 '재'를 새아버지로 삼게 된 '나'는 빚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재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하게 되는데요. 어렸을 때는 사람들을 세는 일을 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보다 하나의 선으로만 여기게 되는 훈련을 받기도 하고, 그 뒤로는 '표적'을 찾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일에 익숙해지자 결국 사람을 처리하는 업무까지 도맡게 되어버립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 감정이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며 드디어 다음 표적만 처리하면 자유가 될 찰나, 경찰이 들이닥치며 마지막 임무를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겐 내 삶 자체가 재난이었다. - p. 92


그렇게 자유의 기회를 빼앗기고도 '나'는 재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재의 사업에도 힘든 일을 안겨줬다며 자책을 하는데요. 이 이야기가 이어지며 '나'의 지난 아버지와의 일화에서 '흰 개'가 '나'에게 가지는 의미 등 에피소드도 슬쩍슬쩍 보여집니다. 굉장히 재미지향적일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분위기는 먹먹하고, 벌어지는 사건의 파격성과는 동떨어진 차분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더 우울감이 다가오고, 고난이 생생하게 느껴지던 박영의 이름 없는 사람들.


나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 p. 205


하나의 전환점이 되던 버려진 B구역으로 향하게 하던 명령과 그 이후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로 인해 '나'는 '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여태까지 표적을 처치하며 받아온 신분증의 의미도 깨닫게 되는데요. 이후의 전개에 긴장감이 있어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던 박영의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벼랑에 몰려 위태로운 심정을 손에 잡힐듯 느낄 수 있게 해주면서도 감정적이지 않아 몰입되던 묘사가 인상적이예요. 보통 한 번 읽고나면 다시 펼치게 되는 일이 드문데 마음이 허할 때 다시 보고싶어질 것 같은 작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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