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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요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그것은 내 이름이었다. 그제야 나는 떠올렸다. 아, 나는 어제 죽었지. 어젯밤 내 방에서 뛰어내렸구나 . - p. 66
호러 장르가 오싹한 건 그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 간섭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죠. 이스안 작가의 기요틴은 이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열 가지의 다양한 기묘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한 작품이기도, 제목이기도 한 기요틴이란 프랑스 혁명 때 죄수들의 목을 내리치던 사형도구라고 합니다. 기요틴 또한 죽음과 삶을 나누는 도구이기에 제목으로 삼은 것 같더라구요. 여름엔 공포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라 읽게 되었는데 단편집은 또 오랜만이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나는 순간 지난번처럼 또다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집 안에 있는 나체의 내 모습이었다. - p. 132
열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에는 도플갱어, 유령, 생령, 살인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짧은 단편들을 모아놓아서 그런가 금방금방 읽히더라구요. 첫 번째 이야기인 환생부터 살짝 소름이 돋았는데요. 이스안 작가의 기요틴은 보면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무섭다기보다는 오싹한 느낌을 주면서 으으~ 하게 되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기발한 이야기도 있고, 이건 어떻게 가능하지? 싶은 이야기도 있어 흥미롭게 읽다보면 금세 끝 장을 넘기게 되더라구요.
나는 나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 p. 148
죽은 자와 너무나 같은 외관을 가진 남자, 죽기 전 기억이 없는 채 점차 그 기억을 떠올려가는 유령, 이별 후 내 눈에만 보이는 생령, 죽음에 매혹된 나머지 그 세계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 술병 안에서 살아있던 뱀, 그룹 안에 있던 친구의 죽음 이후 모인 나머지 구성원들의 대화내용, 남편을 살해한 아내, 죽은 이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일부를 몸 안에 삼켜버린 사람, 죽음을 다루는 크리에이터까지. 정도의 차는 있지만 전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어요.
네 옆모습, 네 미소, 네 정수리, 네 담배 냄새, 네 하나뿐인 다리, 네 외로움과 우울함을 사랑해. 네가 내 전부가 되었으면 좋겠어. - p. 305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들 중 하나가 첫 번째 작품인 환생이었는데요. 어떻게 그런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변해가는 남자의 모습이 흥미롭더라구요. 추모식은 대화의 화제가 추모에서 점차 변질되어 가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어서 끔찍했구요. 여름엔 역시 공포가 대세 아니겠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 읽는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는 이스안 작가의 기요틴 더위를 좀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호러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