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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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곳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 p. 7


간만에 참 재미있게 읽은 스릴러 소설 윤재성의 화곡! 방화범 대 알코올중독자라니 벌써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정의감에 불타 현실의 삶도 둘째로 한 채 남들을 도와주는 걸 미덕으로 삼던 한 남자가 정체불명의 방화범에 의해 가족과 자신의 얼굴도 잃은 후 나락으로 떨어져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맙니다.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는 것만으로 삶은 살아가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그래도 소방관이 되리라는 꿈도 꿨지만 몇 번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난 후 분노만 남게 되어버립니다. 대상없는 세상을 증오해 불을 지르고 싶어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동생을 죽이고 인생을 망친 그 놈을 집요하게 쫒습니다.


○ '네가 구할 수 있었어. 살릴 수 있었다고.' 귀를 막자 들려오던 환청이 잠잠해졌다.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저들을 살리기에도, 스스로를 구원하기에도, 그의 몸은 지나치게 오래 탔다. - p. 199


자신을 방치한 세상에 분노하며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면서도 여전히 정의감도 한 곳에 숨어있기도 한 독특한 주인공. 그에게는 형이 한 명 있는데요. 아버지를 닮은 그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앙숙입니다. 서로에게 독한 말만 내뱉으며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서로를 포기해버린 그들. 변호사로 잘 나가는 형과 노숙자인 그의 현재 위치만큼 서로에게 마음의 거리가 있는데요. 윤재성의 화곡은 이들 사이를 주목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어주더라구요.


○ 몸이 수십 갈래로 찢기는 기분이었다. 한쪽에는 철없이 선량했던 예전의 그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증오로 활활 타는 방화광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갈등하는 자신이 있었다. 산 몸도 죽은 시체도 아닌 채로. 8년 전의 적과 8년 동안의 적 중 누구를 태워야 할지 고뇌하면서. - p. 242


그리고 윤재성의 화곡에는 그 둘의 관계에 다시 한 번 접점을 주는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국제일보 사회부 김정혜. 결혼을 위해 한번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특종을 노리고 있는 기자죠. 단순히 특종을 위해 형진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결국은 서로에게 소중한 동료가 되는 역할인데요.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평범해보이지만 보다보면 정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구요. 정말 몸을 불사르면서 일하는 타입이라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상이었어요. 대담하고 위기에 강합니다.


○ 지금, 불바다 한복판에서, 형진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구원자로서 이곳에 서 있었다. - p. 254


이 셋과 곁다리로 한 형사가 나오며 방화범을 쫓아나가는 이야기인데요. 방화범에게도 놀라운 비밀이 있어 작품의 재미를 더합니다. 그리고 모방범도 나오고, 이 모방범과 관련된 정계비리와 깡패조직들도 나와서 스케일도 꽤 크구요. 일이 다 해결되고 난 후 진범보다 모방범죄와 그 범죄를 막은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도 현실감이 있어 인상적이더라구요. 영화로 나와도 좋을 만큼 읽는 내내 화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던 흡입력 강한 윤재성의 화곡. 올해 읽은 책 중에 손꼽힐만큼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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