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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 창턱에 걸터앉아 카디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방금 전에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진 제야의 종소리를 재생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종소리를 음미했다. 서른하나, 서른둘, 서른셋. 종은 서른 세 번 울린다. 내 나이랑 같네. 유리창이 머리를 기댔다. 오늘은 미지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 p. 15
아직 서른셋은 아니지만 참 공감가는 제목이었어요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시간은 정말 빨라서 눈 감았다 뜨니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었더라구요. 비슷한 또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좀 더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었던 하유지 작가의 신작소설을 읽어보았는데요. 생각해보니 다산책방 작품은 또 오랜만인 것 같네요. 담담하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 영오는 3시 3분이나 3시 33분에 시계를 보게 되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33번 버스가 싫었고 텔레비전에서 33번 채널을 삭제했다. 이저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싫다. 잊지 못했다 보다. - p. 38
네 사람이 나오지만 중심 인물은 오영오라는 인물이예요.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오영오. 외로운 사람입니다. 국어과 편집일을 하고 있구요. 좀 사적으로 들어가자면 가족과도 데면데면한 사이었고 가장 최근에는 하나 남은 아버지도 돌아가셨죠. 그리고 아버지가 남긴 작은 수첩 하나. 영오에게. 그 밑에는 3명의 이름만 적혀있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서른 셋은 이 수첩 하나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 할머니는 할머니에게 첫 번째 사람이다. 단 하나뿐인 사람. 그 집에서 녹슨 대못 역시 하나뿐이었기를. - p. 124
오영오라는 문제집을 서른 세 해째 풀고있다는 오영오. 진땀 흘리며 내놓은 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려주지 않으며 답도 없는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문제집일 뿐이라는 속내가 마음 한 곳을 스치더라구요. 삶의 압력에 먹먹하고 외롭던 오영오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수첩 안의 사람을 한 명씩 만나며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하유지의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 인생에는 답이 없다. 그 대신 사람들이 있다. 나의 0.5, 내 절반의 사람들이. - p. 273
몇 달 동안 수첩에 새겨진 이름들이 영오의 인생에 새겨지며 영오의 휴대폰에도 그 명단이 고스란히 옮겨집니다. 그 중에서는 이제 걸 수 없는 번호도 생기지만 그 또한 영오에게 남겨졌겠죠.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알게되고 섞여가는 일상이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더라구요. 사람과의 관계가 힘에 부치던 영오가 점점 괜찮아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제 서른셋은 어떨지 궁금해지던 하유지의 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잔잔하게 감동적인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