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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
고바야시 에리코 지음, 한진아 옮김 / 페이퍼타이거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 나는 매우 가난하고 허기졌다. 가난은 사람의 마음을 더럽힌다. - p. 8
세상을 지옥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른 셋의 고바야시 에리코가 그랬습니다. 한 번 어느 정도 틀이 정해져 있는 세상의 레일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세상은 참 무관심하고 때론 잔혹합니다.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하고,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정신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던 고바야시 에리코의 에세이 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 비슷한 나이대를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 제목에 끌려 가볍게 집어들었던 책인데요. 얇은 책이건만 문장 하나 하나에 생의 무게가 느껴져 곱씹으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네요.
○ 자살은 미수로 끝났다. 나는 죽지 못했다. 이것은 죽지 못한 내가 다시 살아가기까지의 이야기다. - p. 12
평범하게 일하고 싶다는 건 어떤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 지옥을 살아가는 거야에서 고바야시 에리코는 처음엔 에로만화 편집자로 취업합니다. 빠른 취업을 원해 들어간 회사는 사회보험보장이 안 되는 곳이었고, 그런 곳들이 으레 그렇듯이 야근수당도 없지요. 일한다는 것에 그런 부당함을 참아내고 고된 업무로 시달리던 고바야시 에리코는 어느 날 자살시도를 하게 됩니다.
○ 사람에게 여유가 없으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없다. - p. 54
그 때부터 세상은 고바야시 에리코에게 더욱 잔혹해집니다. 다시 일에 재기하기는 힘들어졌고, 어려운 생활을 충당하기 위해 얻은 정신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은 더더욱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죠. 그렇게 괴로운 나날을 지내며 수차례 자살시도를 하죠. 미수로 끝난 뒤에 주위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한 그녀에게 실망하고 비난의 말을 퍼부어냅니다. 점차 사회복귀는 힘들어지고,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도 그저 생존권만을 행사하게 하고싶은 모양인지 사회복귀를 돕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보이죠. 이런 저런 상황속에 돈을 접할 기회가 적어지니 돈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낯설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만 강하게 들었다. 의미 없이 단지 막연하게 살아가는 삶은 고통스럽다. - p. 141
이 지옥을 살아내는 거야에서 고바야시 에리코가 그런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버텨내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읽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사회보장제도가 어느 점이 취약한지도 느껴볼 수 있었구요. 심한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고서도 끝끝내 자신을 되찾은 고바야시 에리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자신이 원할 때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이 가고싶은 곳에 갈 수 있다며, 나는 이제 내 인생에 예스라고 외칠 수 있다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어요. 에세이 이 지옥을 살아내는 거야. 생이 지옥같이 느껴지는 생의 순간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