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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교계 가이드 - 19세기 영국 레이디의 생활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무라카미 리코 지음,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월
평점 :
○ 이니셜을 대문자로 'Sociery(사교계)'라고 당당하게 표기했을 경우, 그것은 특별한 지정이 없다 해도 '런던 상류 사교계'를 가리켰다. 이러한 영국 상류 사교계 사람들은 5~7월 초여름이 되면 의회의 개회에 맞춰 런던으로 모였다. 자신이 소유한 타운 하우스로 이사하거나, 고급스러운 일등지에 집을 빌리는 등의 방법을 통해 '런던 사교기(시즌)'에 돌입했던 것이다. - p. 35
저는 중세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에 꽤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예요. 특히 가벼운 판타지와 로맨스가 같이 결합된 장르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주로 읽곤 하는데요. 그런 작품들은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로열패밀리와 유명인사들이 많이 등장하기 마련이죠. 그러다보면 그들 사이의 은근한 우월감이나 여러가지 규율, 그걸 알지 못하는 자에게 보이는 은근한 차별과 멸시같은 걸 많이 접하게 됩니다. 실제 그 시대를 알지 못하고 창작물로만 접해오다가 이 시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있길래 한번 읽어보게 되었어요. 그 책이 바로 이 무라카미 리코의 영국 사교계 가이드였습니다.
○ 점찍은 상대와 꼭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예를 들어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타인의 파티에서, 잡지 같은 걸로 일방적으로 얼굴을 아는 유명인을 발견했다 해서 갑자기 다가가 자기 소개를 하는 건 중대한 에티켓 위반이었다. 반드시 양쪽 모두를 아는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야만 했다. - p. 37
영국 사교계 가이드를 일본인이 쓴 저서로 읽는 것도 색다른 기분이 드네요. 이 시대 이 부류의 인물들에게 그만큼 어느정도 환상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뜻이겠죠. 저도 그 중 남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무대였겠지만 19세기 영국 레이디의 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을 만큼 사교계는 여성들에게 중요한 장소였는데요. 집단으로서의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시기였기에 결혼으로 많은 것이 바뀌던 시대에서, 그렇기 때문에 사교계는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더라구요.
○ 오전과 오후, 전원지대와 런던, 평일과 일요일에는 입는 옷이 다르다는 것, 파라솔이나 모자 등 소품 사용법에도 규정이 있었던 것 같다는 내용도 알아낼 수 있다. - pp. 68-69
무라카미 리코의 영국 사교계 가이드를 보면 그들에 의해 행해지는 거의 모든 일은 규칙이 있고 함정도 있습니다. 돈만 많은 중류층 사람들이 쉽게 섞여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그들만의 계급의식 덕분이죠. 초대장 한 장을 보낼 때에도 규격이 있고 사용하는 종이가 다르고 디자인이 다르더군요. 게다가 남편의 카드, 부인의 카드, 결혼하지 않은 자의 카드도 전부 다릅니다. 전달하게 될 때에도 직접 전달의 경우, 사용인을 부리는 경우가 다르고, 방문 시에도 놓아야 하는 자리가 있죠. 그리고 그 자리에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즉 태생부터 다른 자의 초대장을 거르기 위한 함정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상류 사교계의 에티켓』(1893)에는 자택에서 지내는 날의 오전에 입는 드레스는 너무 비싸지 않은 색이 있는 면이나 모직 등의 소재로, 청결하고 장소에 어울리는 것을 선택하라고 추천한다. 장식은 가능한 한 심플해야하며, 고급 레이스는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다. 보석 장식품은 심플한 골드로, 반지라면 보석이 달려 있어도 괜찮지만, 투명한 보석은 밤의 정장(풀 드레스)'일 때만 한다. -p .70
수많은 규칙을 외우고 까탈스럽게 타집단을 배척하는 머리좋은 사람들이 그 당시의 귀족층이었으니 초대장만 하더라도 그 정도인데 옷차림이야 말할 것도 없죠. 하루에 몇 번씩 갈아입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소에 따라 입어야 하는 옷의 소재부터 다릅니다. 게다가 당시 옷차림은 유행이 한 달만 지나도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옷에 어울리는 장신구도 까다롭게 규정을 정한데다가 장소마저 한정지어버리니 전 외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라카미 리코의 영국 사교계 가이드를 읽기만 하는 입장인데도 기가 질리더라구요. 이런 생활은 피곤하고 머리아파서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 상류 사교계의 여주인에게 요구되는 역할 중 하나에, 밤의 식탁에 초대한 손님들의 리스트가 절묘할 것, 이라는 사항이 있었다. 현재 한창 유명한 정치가나 관료, 말을 잘하고 그 장소의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스킬을 지닌 예술가, 기지가 풍부한 유부녀,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미모의 '프로 미녀(프로페셔널 뷰티)' (그 자리에 자리한 고귀한 남성의 은밀한 정부이기도 했다) 등을 잘 조합해 자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 p. 96
그런 한편 요즘 왕좌의 게임을 정주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자주 불리는 호칭들도 나오니 자연스럽게 보고있던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하며 재미있었습니다.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인맥을 늘리려고 애를 쓰는 사교계에서 안주인들의 노력을 보고있으니 신기하기도 했구요. 이 시대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고증을 위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았던 무라카미 리코의 영국 사교계 가이드. 뒤에 참고한 문헌들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깊이있게 파고들기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냥 이 시기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쉽고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