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지음 / 봄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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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마다 저는 명절 풍경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나이가 먹어가도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그 기형적인 역할분담에서 우리 엄마는 누구나 말하는 착한 며느리였지만 저는 내심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노라며 마음을 먹곤 했습니다. 이런 나를 두고 엄마는 걱정하기도 했고 저도 덩달아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런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역시나 이건 비단 저 하나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예요. 그런 인식에 그래도 요즘은 온 가족이 모여 만들거나 아예 음식준비과정 자체를 없애는 등 꽤 바뀌어가는 것 같아 나쁘지 않은 흐름인 듯 보입니다.

 

비단 명절 뿐만 아니라 며느리의 삶은 꽤 고단하게 돌아가더군요. 결혼 자체는 참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시가에 대해서 얘기할 땐 말을 저어하구요.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다보니 명절에 나가서 외식만 하는 곳도 있다고 하고 꽤 인식 자체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과도기적 시기라 그런지 제 주위에서 그렇게 괜찮은 시가를 만난 곳은 없는 것 같더라구요. 옛부터 내려오는 며느리에 대한 인식이 있잖아요. 너는 이 집에 들어온거다. 너는 이제 우리 가족이다. 내조를 잘 해야한다. 뭐 이런것들. 게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가족이 된 셈인데 어찌 그렇게 잘 이해해주고 살갑겠어요. 사실 서로 기본적인 예의만 지켜주면 될 일인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고 옛날 분들이 많으니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더라구요. 나이 먹고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시가는 정말 보통이 아니더라구요.

 

목차 목록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이런 소재는 내가 겪지 않았어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계속 지켜봐왔기에 공감이 가서 읽는 내내 불편했고 그 불편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알아서 더 답답했어요. 저자는 꽤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애초에 이런 대처를 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꾸 상기되더라구요. 악아와 시가 사이의 남편은 오히려 악화시키면 악화시켰을 뿐 좋은 중재자가 되지도 못했구요. 결혼을 하면 생기게 되는 새로운 역할이 이렇게 괴로울 줄 누가 각오하고 결혼 했겠어요. 심지어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저자 악아는 결혼하고나서 남편이 해외출장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 있는 시누이까지 착실히 거슬리게 행동하구요.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저자 악아도 기가 센 편이라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싶기도 했지만 시가는 그 이상으로 착실하게 괴롭히더라구요. 하필 시누이가 결혼해서 시매부와의 대우로 차별까지 느껴지니 더했겠죠.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기왕 가족이 된 거 뭐하러 이런말을 하나 싶을 정도였고, 남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못해 바스라집니다. 결혼을 처음 해서 분가 한 것도 같고 둘 다 일을 하고 있는데도 시가에서는 악아에게만 가사노동, 퇴근 후 제사노동 등을 강요하고 남편은 그냥 그 보살핌을 받기만을 원합니다. 남편은 모르고 있는 제사 등의 경조사 날짜를 악아에겐 신혼여행 다녀온 후부터 빼곡하게 적어 넘겨주고 제사 일주일 전부터 재촉했다니 알만하죠. 요즘 세상에 이렇게 극성인 시가도 처음 봐서 놀랍기까지 하더라구요.

 

그래도 제목이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에 나오는 악아도 만만치 않은 며느리더라구요. 처음엔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많은 인내의 과정을 거쳤죠. 하지만 자신이 참아내면 모두 다 행복한 게 아닌 자신만 뺀 모두가 행복하다는 결론을 내고 시가에 한방씩 날리는 이야기들이 사이다까지는 아니어도 확실히 고구마는 아니더라구요. 악아의 고군분투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처음엔 정말 보는 제가 막막해서 아 이걸 어떻게 개선하나 싶었는데 빠른 변화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보여 숨통이 틔더라구요. 꽤 많은 분이 공감하며 볼 수 있을 듯한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시가 스트레스로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하라고 권한다기보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더라. 하고 넌지시 말해주고 싶은 책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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