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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이영미 옮김 / 레드스톤 / 2018년 9월
평점 :
○ 그렇게 사귀는 것도 재밌겠네. 요즘 인간관계는 너무 쉽게 연락을 주고받잖아, 그래서야 고민하거나 걱정하는 심적 갈증이 없지.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아날로그적 교제, 그게 진정한 연애일지도 몰라. - p. 61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아날로그 적인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죠. 너무 쉽게 메세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며칠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편지, 용량을 가득 채우기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신중히 꾹꾹 눌러담던 그 시대가 말입니다. 이 기타노 다케시의 일본소설 아날로그는 그런 감성을 살려 놓은 느리지만 그만큼 신중한 사랑이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 바다가 파랗게 빛나지 않아도, 공기가 탁해도, 도로가 자동차 때문에 시끄러워도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 덕분에 빛나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알 수 있으니까. - p. 136
주인공인 사토루는 건축 디자인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30대 독신남. 그러나 건축 설계 프로그램이나 핸드폰과 친하지 않은 아날로그적인 사람입니다. 심지어 도면도 직접 모형을 만드는 옆에서 보면 참 구시대 사람이죠. 그런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카페 피아노에 들렀다가 운명의 여인 미유키를 만나게 됩니다. 그 끌림에 스스로를 맡겨 대화를 나눈 둘은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은 채 매주 이 곳 카페 피아노에서 만남을 갖기로 합니다.
○ 거래처 사람이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업무도 안 된다.'고 했지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만났을 때의 신뢰감이지 않을까. - pp. 175-176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수도 있습니다. 오지 않는다고 할 지라도 연락할 방도도 없죠. 그저 가서 기다리다가 안 온다면 아 오늘은 만날 수 없겠구나.. 하고 돌아가는 수밖에요. 그럼에도 그 하루를 활력소로 삼아 남은 날들을 더 열심히 살아가게 된 사토루. 하지만 직장인의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죠. 워낙 밤샘을 많이 해야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있다보니 목요일에 못 나가게 되는 날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전전긍긍하며 다음 약속을 고대하죠. 목요일 저녁을 개인시간으로 갖기 위해 열일하는 사토루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 저는 디자이너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어요. 미유키 씨와의 삶은 내 생애를 통틀어서 최대의 프로젝트입니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 p. 180
그렇게 점점 가까워지다가 일 때문에 오사카로 내려가야하게 된 사토루는 미유키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로 하는데, 그녀는 하필 그 날 이후 감쪽같이 사라져버립니다. 목요일마다 카페 피아노에서 기다리던 사토루는 시간이 되어 오사카로 내려가게 되고... 과연 미유키는 어떤 사정으로 사라져버린걸까요. 둘은 만날 수 있을까요? 사토루의 유쾌한 친구들이 양념으로 버무려져 그렇게 심심하지도 않게 금세 읽어낼 수 있던 기타노 다케시의 일본소설 아날로그. 옛 감성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잔잔한 이 책 괜찮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