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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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누가 좋아서 정의의 사도 따위를. 나는 굳건하게 내 휴일을 지켜낼 거예요. 게으름 피울 수 있다면 뭐든 할 겁니다. - p. 50

 

현 시대는 참 다들 열심히 사는 시대죠. 조금만 빈둥댔다가는 대번에 호통을 듣게 됩니다. 젊을 때야 말할 것도 없고 평생을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를 쓰고 열심히 살아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들 하죠. 실제로 운이 좋지 않고서야 그 말이 맞기도 하기에 저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시류에 편승하고는 있습니다만 내면의 게으름이 저를 지배할 때가 있어요. 사실 휴식이야말로 더 열심히 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주잖아요. 휴일이 있기에 평일에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이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박혀있는데 쉬다가 이렇게 놀아도 되나 문득 불안해질 때 나 자신에게 정당화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은 일본장편소설이 나와버렸네요. 읽고나면 이야, 이 책은 대체 뭐지? 내가 대체 뭘 읽은 거지? 하고 얼이 빠져 버리는 동시에 참신함에 감탄하게 되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일본소설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을 읽었답니다. 

 

아아, 나는 이제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 p. 135

 

모리미 도미히코의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의 주인공 고와다는 지독한 게으름뱅이입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게으르다고 정의하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게으름을 만끽하죠. 이런 게으름뱅이가 어떻게 모험을 떠나느냐. 그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게으름뱅이는 자신의 휴일을 지켜내기 위해서 동화같은 모험을 겪게 됩니다. 

 

 

잠자려는 의지만 있으면 나는 언제든 잘 수 있어. - p. 246


이 세계관에는 하치베묘진이라는 신이 있습니다. 이 신의 사자를 자처하는 폼포코 가면이라는 괴인도 등장하죠. 폼포코 가면은 괴상한 너구리 가면을 쓴 괴인이긴 괴인이되 정의의 사도이기도 합니다.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나몰라할 줄을 모르죠. 참 바쁘게 살아가는 부지런한 위인이예요. 처음엔 경찰에게 쫒기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점차 선행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기를 얻어가게 됩니다. 심지어 출몰시간대를 분석해보면 생업은 따로 있고 여가 시간에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정말 부지런한 것이 주인공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죠. 

우리는 인간이기에 앞서 게으름뱅이입니다. - p. 293


자, 그런데 이 폼포코 가면이 고와다에게 자신을 계승하기를 권합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습니다. 이쯤되면 게으름을 퇴치하고자 고와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와다를 쫓는 괴인, 그리고 괴인을 잡으려고 하는 토요구락부의 5대와 그들이 고용한 탐정. 거기에 행복은 유한한 자원이라는 사상으로 행복의 평등한 재분배를 주장하며 소소한 불행을 만들어 선사하는 대일본침전당까지. 각자 자신들의 방식으로 고와다를 못살게 굴게 되죠.

중요한 점이니 다시 반복하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심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난 전 인류의 장대한 유대를 주목하라. 누구든 졸릴 때는 졸리다. 잠자라, 폼포코 가면. 잠자라. 정의의 사도니까 게으르면 안 된다고 대체 누가 정했어? - 324

 

 

그럼에도 모두에게는 지독한 악의같은 게 없어요. 보고 있으면 모든 인물이 웃기고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대일본침전당까지도요. 고양이가 불쑥 말을 거는 기묘한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사랑스러워요. 그리고 묘한 역설들이 존재합니다. 게으름뱅이는 게으르면서도 활동적이고 탐정은 길치이며 정의의 사도의 정체는 보통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악당얼굴이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다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기묘하고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을 따라가게 됩니다. 

 

 

거룩한 게으름뱅이는 평범한 사람이 보면 이상한 존재이지만 하늘의 질서와는 맞는 존재이며, 쓸모없어 보이는 가운데 쓸모 있는 사람이다. - p. 328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위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순탄하게 흘러가는 이 토요일의 모험. 주인공은 과연 휴일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빈둥댈 수 있는 일요일은 돌아오는걸까요? 휴일이 가다오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일한 평일에 지쳐 빈둥대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 내면의 게으름에 응답해 시원한 커피 한 잔과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을 권해봅니다. 우리, 조금 더 게을러져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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