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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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감정들, 겪었던 사건들, 세상에 대한 시선들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정리를 해놓는다면 남들은 몰라도 적어도 내 자신은 나에 대한 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기가 될 수도 있겠고, 논리정연한 엑셀형식의 파일이 될 수도 있을 그런 '자서전'은 항상 머리 속에서만 구상이 될 뿐 아직 실행은 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엔 그런 것들이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파악을 하기에는 모자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나에 대한 파악은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무균실 속의 '나'만을 염두에 둔 절름발이의 실험이 되는 게 고작일 것이라는 게 첫번째 이유이고, 그런 기록들이란 글로는 표현되지 않는 인생 절반의 그 무언가를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그 두번째 이유에 대한 단상이란 최근 읽은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에세이에 나온 아래와 같은 글과 맥락이 닿는다.
우리가 겪는 세상만사에 대한 모든 감정은 살아내면서라야 온전히 이해되거나, 전달되어진다.
한 인간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인생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생의 한 국면을 통과하며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느껴보는 것이다. 

"여든 아홉의 친정어머니와 여든 다섯의 시어머니가 모두 병석에 있는 이 봄날, 나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편지쓰기와 친구 만나기, 그리고 목욕을 즐기시던 친정어머니는 옷 갈아입을 생각도 없이 웅크리고만 있다. 맛있는 음식과 고운 색의 옷을 좋아하시던 시어머니는 식도가 제 역할을 못해 콧줄로 음식을 섭취하며 광목의 병원복 하나로 버티신다. 윤기 없이 바짝 마른 살갗에 볼을 비비면서, 자식을 눈앞에 두고 누구시더라 묻는 초점 없는 눈길을 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러나 그 눈물은 효심에서라기보다 사랑과 갈등과 증오의 세월을 넘어, 인생의 종말에 유한한 인생끼리 만나 느끼는 깊은 슬픔 때문이다. 아! 무상한 인생이여. 우리 모두 그렇게 슬픈 봄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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