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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말들 - 우리의 고통이 언어가 될 때
조소연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나는 최근에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게 되면서 브런치스토리에서 어떤 글들이 쓰이고 책이 되는지가 궁금했다. 제11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에 궁금증이 생겨 읽어보게 된 <태어나는 말들>은 조소연 작가의 지난한 가정사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작가가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서인지, 오래된 상처를 글로써 치유하는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깊게 곪았던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이제는 흉터가 된 그 흔적을 덤덤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를 포함한 다른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또한 자기 상처를, 흉터가 된 그 흔적을 이렇게 선뜻 이야기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부모님과 같이 지내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육체적, 정신적 기복을 아주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지켜보고 때로는 이와 같은 돌봄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몹시도 견딜 수 없었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이 개탄스러웠고, 그런 자의식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짜증이란 형태로 투영되었다. 어머니도 지지 않고 자신의 모든 히스테리와 불안과 분노를 가장 가까운 딸에게 여과 없이 쏟아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넌덜머리를 내면서도, 서로가 필요한 기이한 의존 관계 속에 있었다. 84p.
우리의 영혼에 서리가 낄 만큼 추운 계절을 지날 때, 그 혼은 빈 들판을 헤매고 있겠지만 그 시절을 기록으로 남기고 침착히 바라보는 일, 그리고 그 세계에서 천천히 공을 들여 걸어 나오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 춥고 아득하고 막막한 생의 한 시기를 빛이 들지 않는 곰팡이 낀 곳에 너무 오래 방치하지 말 것. 볕으로 꺼내어 이리저리 살피고 곰곰이 들여다본 후, 먼지를 탁탁 털어 양지에서 말려줄 것. 나의 자궁에 피가 고이지 않게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일. 우리의 신체 기관은 결코 영혼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 영혼이 병들기 시작할 때, 우리의 몸 또한 병들기 시작한다. 179p.
말하지 못하던 것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상처를 전시하는 것이 아닌, 객관화하고 관찰하고, 기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병든 상태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아픔을 명료하게 인식하고,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기 시작하면 치유되기 시작한다. 치유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 들어찬 슬픔의 덩어리를 낱낱이 풀어 헤치는 작업이다. 이 덩어리를 분해하고 해체하고 나면 나만의 '미지의 세계'가 드러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구체적으로 납득하기 시작할 때, 자신을 옥죄던 내부의 결박에서 풀려나 비로소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19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