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 지리산에서 히말라야까지, 청전 스님의 만행
청전 지음 / 휴(休)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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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주며 가르쳐 줍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 당시 가장 천대받고 무시당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이 반쯤 죽여놓고 옷도 벗겨놓고 가더라. 그 때 한 제사장(사회적으로 지위가 대단히 높은 사람)이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한 레위인(사회적으로 지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 그 길로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은 여행하던 중에 그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서 기름과 포도주(당시에는 굉장히 귀한 것들입니다)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다음날 데나리온 둘(1데나리온이 당시의 하루 품삯임)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세요. 돈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오면서 갚을게요.' 라고 하더라. 이렇게 말씀을 마치면서 예수님은 다시 묻습니다.
'너의 생각에는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의 이야기>부분을 정리한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간결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다니지만 진정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구원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간결한 가르침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는 사람'이 바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에서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나를 사랑해 주고 힘들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라는 교훈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궁극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는 청전스님의 만행이야기를 우리에게 소리없이 전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청전스님의 글을 보면서 수행자의 표상이 어떠해야 할지 안내해주는 것 같습니다. 수행자라면 고행하듯 걸어다니고, 돈이 없이 걸식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풋풋한 그의 행동을 보면서 '다른 생각이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뇌를 여의고 화두에 집중하는 오직 한 생각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투명한 맑음'을 들여다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길게 설명하듯 늘어놓았던 이유는 청전스님을 생각해서입니다. 만약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있다면 청천스님은 구원받을까, 아닐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청전스님은 구원을 받지 못하겠지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펴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인것이지요. 유대인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그 당시의 논리에서 예수님은 강력히 반발하셨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했는데 다시 그 유대인의 논리를 갖고 구원을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종교가 아닌 유대교를 신앙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종교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로 살짝 옆으로 나갔지만 구원받을 수 밖에 없는 청전스님의 맑은 구도행과 만행은 글을 읽는 우리들을 동행자로 옆에서, 때로는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게 만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스님은 "힘없고 소외받고 아픈 사람이 내 종교"라고 말합니다. 성직자라면 반드시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하는 바른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스님이나 신부ㆍ목사 등 성직자는 자신이 먼저 청정하고 청빈해야만 한다"며 수행자들의 지독한 자기관리를 강조합니다. 

책 제목을 잘못지었다 싶습니다.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라는 제목과 '스님'이라는 저자 때문에 이것은 특정종교로서의 불교에 갇히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를 만난 사람을 치유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으로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안에 개운한 맑음을 번지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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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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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디자인

사람들은 왜 유럽의 디자인에 열광할까? 그 가운데 특히 ‘핀란드 디자인’에 주목한다. 공공디자인, 에코디자인의 영역때문일까? 핀란드 특유의 냄새를 듬뿍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어느 특정지역의 공공성을 함유한 디자인이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디자인을 넘어 ‘문화’로 자리잡는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 도시’, ‘디자인 거리’를 표방하고 있는 서울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기줄을 없애고 매년 뒤집는 보도블럭도 디자인거리가 되면서 깔끔하게 바뀌었다. 언제 또 필요하면 뒤집어야 할텐데 어떻하나 하는 걱정과 함께 말이다.

겨울이 길고 추운 기후 조건, 유럽변방의 지리적인 악조건은 오히려 핀란드만의 고유문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것은 결국 핀란드 디자인의 힘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보다 편리하고 기능적이고, 아름답고 질리지 않은 실용성을 담은 디자인이라는 그들의 고유문화 말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핀란드는 일상이 디자인이다]에서는 사용자를 배려한 일상 속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다. 커피 잔과 의자, 테이블, 물 컵 등에는 디자이너의 생각과 사용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다. 책 전체의 제목처럼 문열과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생활속의 디자인을 소개하고 있어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함께 살짝 엿볼 수 있어 디자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2부 [핀란드 공공디자인의 의미]에서는 핀란드의 공공디자인을 기본으로 소개하고 있다. 디자인 철학이 담긴 공간과 시설을 소개함으로 생활철학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디자인에 공간의 배치와 사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3부 [핀란드 사람, 그리고 디자인 철학]에서는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만날 수 있다. 핀란드 하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사우나’일것이다. 그들이 사우나 없이 살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게됨으로 인구수만큼의 사우나 수가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표지부터 내지 디자인까지 일관된 컨셉으로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차갑고 긴 겨울의 이미지마냥 흑백의 표지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체와 레이아웃의 북디자인이 핀란드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적절한 조화가 책을 읽고 보는 즐거움을 함께 가져다 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디자인철학은 무엇일까? 우리들의 시민의식속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어느정도 위치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디자인 한국, 특히 최근에는 디자인서울을 이야기하면서 도시를 깔끔하게 정돈하는 것은 있는데 디자인은 없고, 디자인이 있더라도 디자인 철학이 없는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핀란드의 생활문화가 되어버린 그들의 디자인과 디자인철학은 도시행정뿐만 아니라 우리들 개인삶 속에서도 함께 준비하고 연습되어야 할 것이다. <백야보다 매혹적인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겨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윈터홀릭》을 읽으면 춥고 긴 겨울여정속에 혼자 외롭게 서 있는 기분이라면 이 책은 핀란드인의 생활속으로 들어온 디자인을 함께 만나는 것 같아 외롭지 않다. 핀란드 - 이 책 한 권으로 먼저 만나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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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논리 -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하는 77가지 방법
줄리언 바지니 지음, 강수정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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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의 헛소리를 간파한다?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는 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까? 책의 내용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로 뛰어나기 때문일까? 출판사의 영업전략이 훌륭하기 때문일까?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정답이 없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정의’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이 ‘개인’의 입장인지, ‘다수’의 입장인지에 따라 그 정답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생활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접점들이다. 언젠가 법륜스님에게 ‘불교적 입장에서의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때 한가지로 정해진 그 무엇의 답은 없다는 의미로 ‘없다’고 결론부터 말하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서 살려달라고 할때 손은 닿지 않고 밧줄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빈집에 있는 밧줄을 가져와서 사람을 건져주어야 할까? 주인에게 허락없이 가져온다면 도둑질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을 포기하면 살생이 되지 않는가? 불교의 계율을 지키는 입장에서는 도둑질을 하면 안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살생계율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그러나 여기까지는 자신의 계율을 지키는 것을 소중히 하는 소승적 입장이고, 대승불교적 입장에서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야단치고 도둑놈취급해도 억울해하지 않고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보살의 정신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가짜논리>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은 공리주의라고 하는 담론적 흐름위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이 <가짜논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들을 수 있고, 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의 속내를 꼬집으면서 논리를 파헤치고 있다.


2. 정치인들의 돌발영상과 <가짜논리>

우리 주변에서 정치인들의 앞뒤 말이 안되는 영상을 모아 보여주는 <돌발영상>을 본 적이 있을거다. 정치지도자들이 웃음거리로 변하는 대목이다. 스스로의 정치철학, 인생철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를 종종 내뱉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짜논리>에서도 “저는 국민을 믿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정치지도자를 예를 든 곳이 있다. 낙오학생방지법을 강행해서 교과내용에 대한 학교의 자율권을 축소한 정책결정은 뒤집어 보면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에 인센티브를 주는 세금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개인적인 이유에 따라 스스로 결혼 여부를 결정하도록 믿고 맡기지 못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가짜논리>에는 심리적인 변화를 담은 결과로서의 대화, 정치적인 이야기, 과학과 전문성을 담은 이야기, 소설가나 음악가의 메시지 등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순들을 하나 하나 짚어주고 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꼼꼼히 짚어보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3. 우리들의 생활과 대화 속의 <가짜논리>

이 같은 부분은 비단 정치지도자들이 대상이 아니다. 우리들도 일상의 대화나 회의, 미팅 등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수단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말을 할때 ‘가령 예를 들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면서 일어날 수 없는 경우를 예로 설명하거나, 통계자료나 그래프를 근거자료로 제시하지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자료이거나 약간은 짜증섞인 말투로 “그 부분을 또 거론해야 합니까?”라는 투로 억누르거나...

정치인들을 욕하면서도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도 존재하는 이기심에 발로한 표현법에 대해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관대한 입장을 가진다면서 앞뒤 말이 안되는 말로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인들을 덮어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4. <가짜논리>를 찾아서

우리나라는 내년도 총선과 대선을 위해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는 듯 하다. 대통령은 ‘레임덕은 없다’면서도 벌써 언론에서는 ‘레임덕이다’라고 맞대응하고 있다. 또 어떤 주요정당이나 정치인들은 ‘국민복지’문제를 들고 나왔다. 복지는 필요하고, 세금은 덜 내고 싶고~ 이것이 주된 관심사다. ‘복지’를 해야 한다고 하면 ‘세금’많이 내는 것으로 겁주고 있는 형국이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머리맞대어 논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나 개인의 입장만 되풀이하여 주장하고 있다. 미국식 복지와 유럽식 복지에는 각각 차이가 있다. 미국식 복지는 본인이 세금낸 만큼 받아가는 형국이라 서민이 병원 한 번 가려면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하는 한다면, 유럽식 복지는 대신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방식이다.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조화를 찾아야 할텐데 서로 주장과 주의만 난무한 형국이나 씁쓸하다. 이들 정치인들의 주장속에서 <가짜 논리>를 찾아보는 것도 국민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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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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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독자>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요즘 책 읽기를 즐기고 있다. 어떤 사람은 1년에 100권을 목표로 삼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는데 한편으로는 갸우뚱하다. 1년에 50주, 1주에 2권을 읽어야 하는데 3~4일에 한 권 책을 읽어 낸다고 할때 책만 보지 않아서는 불가능한 일 같다. 물론 책을 잘 읽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정독하지 않고서는 독해력이 떨어져 마음을 다해 읽어야 한다. 나도 가능할까 하는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지만 ‘역시나~’ 어렵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을 만났을때 ‘나는 어디에 속할까?’하는 궁금함이 있었다. 그보다 우선 책읽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중독자’라고 했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알려주고 있다.  

단순히 <장서광>이나 <애서가>의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다. <수집광>에 대한 이야기, 또 <책 중독자>의 수준을 넘어선 다독가, 책 지름신, 책 파괴자 등의 <돌연변이>들에 대한 이야기, <책 도취증>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읽는 내내 나는 어디쯤 서 있는지 살피면서 읽게 된다.  

또 우리들의 이러한 유형(?)을 극복하는 방법도 안내하고 있다. 식당에서, 화장실에서, 잠자리에서, 여행중에, 직장에서 책 읽는 것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리와 보관, 빌려주기등의 행동요령에 대한 지침과 더불어 <책 중독>에 대한 <치유하기>의 과정도 있다.  

구입한 책을 다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나는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 요즘 책읽기와 관련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책읽기>는 <글쓰기>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어 <책읽기>의 방법적인 면을 넘어선 <내면의 심리현상>을 다루고 있어 새롭다.  

책을 구입해서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키우고, 또 그 결과로 남은 책을 정돈하고 정리하는 것이 우리들에게는 함께 필요한듯하다. 책을 필요한 곳에 기증하거나, 공유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거나, 쓰레기로 버리거나 하는 정리도 필요하다. 타이밍이다. 적절한 때 정리하고 또 남은 책은 깔끔하게 정돈하면서 사는 것이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중간 중간 삽이되어 있는 만화는 백배 공감하며 쓰러지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는 외국인이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새로운 접근을 했다고 이해하면서 읽었지만 중간 중간이 만화는 현태준이라는 국내사람이다.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그렸다기 보다 책 중독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공감이 커 배를 잡고 웃게 되고, 이 책이 자칫 지루해지거나 무게중심을 잃을때 만화컷이 적정한 안배를 하고 있어 다행일 정도로 역할이 크다.



저자 | 톰 라비Tom Raabe
골수 책중독자인 톰 라비는 포틀랜드, 메인, 샌디에이고, 덴버 등지에서 신문사 프리랜서, 편집자, 작가로 일했다. 책으로부터 자유롭던 시절에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인도, 네팔,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유럽 등지를 쏘다녔다. 한꺼번에 많은 독자들을 뜨겁게 달구지는 않았지만 알음알음으로 끊임없이 은밀히(?) 읽히고 있는 이 골수 책중독자의 고백록은 2011년 현재 출간된 지 꼭 20년이 되었다.

역자 | 김영선
한때 “뒷방에 숨어들어 책이나 읽으며 살아버릴 테다”라는 치유불능의 책중독자적인 생각을 품었으나 다행히 재활의 길을 걸어 지금은 출판 기획 및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재즈: 자유로운 영혼의 울림』『피테르 브뢰헬』『레오나르도 다 빈치』『르네 마그리트』『초현실주의』『세상의 모든 영화』『괴짜사회학』등이 있다.

그림 | 현태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장난감 수집가, 박물관 관장 등 하는 일 많은 전방위 예술가. 최근엔 10여 년간 모은 옛날 장난감과 잡동사니들로 ‘20세기 소년소녀관’과 ‘뽈랄라 수집관’을 열었다. 중1 때부터 시작된 책 수집의 열정도 대단해서 수천 권의 재미난 책을 모은 ‘책 수집광’이기도 하다. 글 쓰고 그림 그린 책으로 『뽈랄라 대행진』『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오늘도 뽈랄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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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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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교관련 서적이거나 스님이 쓴 책이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소설 무소유>, <기도-내려놓기> <붓다브레인> <스님의 주례사> <번뇌리셋> <선방일기>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일반적인 관심을 끌고있는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법정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무소유>는 지난 4월 출간이후 10만부를 넘어섰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마음이야기를 다룬 <스님의 주례사>도 지난 9월 출간이후 10만부를 넘어선 대중적인 책이다. 


  

 
그 가운데 <기도-내려놓기>와 <선방일기>는 작은 책이다. 작아서 눈을 끌지만 두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럼 두 권의 책에 대해서 살며시 책장을 넘겨보자.

<선방일기>

이 책의 저자 지허스님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출가연대와 입적시기가 모두 추정하고 있는 것 외에는 없다. <선방일기>도 1960년대의 겨울안거 기간의 기록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1960년대는 전쟁의 폐허속에서 모든게 부족한 시절이었겠다 싶다. 서울은 도시라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세상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겨울안거를 위해 강원도의 상원사로 걸어갔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버스가 다녀도 비포장도로에다가 하루에 몇 번만 다니는 길이었을테고, 그것마저도 월정사로 상원사로 이어지는 길은 더더욱 없었을테니 말이다.

동안거는 10월보름에서 1월보름까지 진행된다. 거의 백일에 가까운 기간동안, 하루에 12시간을 앉아서 ‘화두’와 씨름하게 되는 것이다. <선방일기>에는 선방수좌들의 마음과 행동이 담겨있다. 공동체의 삶이 있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절이라고 뭐 넉넉했을라고! 거기에다가 선방수좌들의 절제된 삶이 어려운 살림에도 넉넉히 보냈을 것이다.

<선방일기>에서는 두 가지를 건질 수 있다.


첫 번째는 공동체생활이다. 현대사회가 개발과 성장의 틈바구니에서 개개인의 인간성은 상실되고 공동체는 붕괴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러한 현대산업문명속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발달하면 인간성도 회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불가능’하다는 비판속에서 실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선객들의 안거는 철저한 공동체정신속에서 소임을 나누어 지낸다. 선객들의 안거생활의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닮는다면 공동체는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선객들의 안거생활이 그대로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그 모양새가 바로 공동체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개념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산다고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가치와 목적을 두고 서로 의견과 성격이 달라도 함께 모여서 정진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의 과정이고 전부인것이다.

두 번째는 초발심이다. 올깨끼와 늦깨끼의 이야기에서 절에 먼저 들어와 ‘절밥도둑놈’이라는 욕을 먹는 것이 어찌보면 초발심을 잃고 사는 까닭일것이다. 한편으로는 ‘장판때만 묻히는’ 오래된 노장, 일상화되고 관성화된 절에서의 수행생활이라는 질타의 말이다. 또 처음 출가할때의 마음, 견성성불하겠다는 처음의 마음을 견지하라는 죽비의 소리이다.

지금의 정치인들도 처음 출마할때의 그 마음, ‘오직 국민’을 외쳤던 그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말이다. 이 책의 표지에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들의 서재 속 한 권의 책’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충분하다.

<선방일기>는 동안거 기간동안의 일기다. 마음에서 일어난 생각들을 모아놓기도 했고, 선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엮어놓기도 했고, 견성성불을 위한 일념정진의 이야기들을 모아놓기도 했다. 글은 깔끔하다. 차가운 겨울 동치미국물 한 사발 마신 느낌이다.

또 한권의 책 <기도 -내려놓기>

이 책은 지난 7월 출간이후 불교도서총판 운주사의 집계에서 지금까지 베스트셀러 1위로 집계되는 책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찾았고, 지금은 사찰에서 <법보시>로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사람은 누구나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법륜스님은 ‘욕심’으로 기도해서는 안된다고 잘라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느님과 부처님에게 비는 내용이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들이 갖고 있던 ‘기도’에 대한 선입견을 몽땅 부정한다. 법륜스님은 서문에서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 때문에 일어납니다. 눈을 안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선방일기>에서 말하고 있는 선객들이 왜 면벽수도정진, 장좌불와하는 용맹정진을 하는지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직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겠다.

또 ‘내가 바라는 바가 성취되는 것이 <기도>라는 고정관념이 깨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라고 한다.

<기도>와 <선방일기>의 공통점은 그동안의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무장해제당하는 느낌이다. 차이점은 <기도>는 나를 숙여 엎드리는 절을 통해 참회하고 ‘아집’을 내려놓게하고, <선방일기>는 참선을 통해 몸을 조복받으며 ‘아집’을 벗어버리게 하고 있다. 일상의 평범한 언어로 자분자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가르침은 울림이 크다. 채워서 얻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 채워지는 진리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전하는 사자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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