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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한 것.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리벡은 그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영혼은 기억이라고 한다. 죽음도 삶과 같다고 한다.
“어째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른 것보다 오래 남아 있는 걸까요?”
“다른 것보다 더욱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죠.” - p.301
간절히 원하는 것이 기억이 되고, 영혼의 삶이 된다. 죽음 후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무(無) 일 테고, 그것이 각자에게 의미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공간적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이곳에 있고, 이곳에서 만든 생각과 감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의 존재를 더듬어 이해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기억이 삶이 된다는 말이 꽤나 와 닿는다. 없는데 있다며 의미의 존재를 덧붙이기엔 모순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질문 없이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소설인데 소설이 아니다. 이만큼 모순적이면서도 ‘그러네’할 법한 주제와 관념적인 것들을 묘지 안에서 이야기 한다. 죽음, 사랑, 살아있다는 것을 감각과 기억으로써 삶을 대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죽음 후의 삶은, 살아있는 날들이 주었던 흔적과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 살아있는 이들에게만 의미있다는 천국과 지옥을 떠올리면 지금껏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국과 지옥의 공간적인 개념은 우리가 알 수 있는 한계에서 가장 쉬운 의미로 이해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고 사실은 자신들이 품고 있었던 마음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_했다. 이곳에서도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 미움이 꽉 찬 사람은 자신의 불편한 마음에서 오는 자신만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질 않는가.
기억을 붙잡으려 하는 마이클(죽은 영혼)의 노력 또는 살아온 삶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그의 집착 덕에 책을 읽는 동안 생각을 여러 번 고쳐보기도 했다. 책 안에서 감각없는 영혼끼리 사랑하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이 육체에 묶인 듯 묘지 밖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것도, 영혼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표현하는 것도 모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갑자기 데미 무어가 여주인공으로 나온 '사랑과 영혼'이 떠오른다.
하나의 결말을 향해 흘러가는 소설책으로 기대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삶에 대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럽게 이 책의 흐름을 결말보다도 더욱 궁금해하며 읽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삶에는 답이 없다는 말처럼 공동묘지에서의 대화가 계속 질문을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알차게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이내 인생을 낭비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이클 모건이라는 인간의 존재를 구성했던 모든 요소를 기억해내고, 하나하나 세어보고, 무게를 달아보았다. 각각의 요소들은 저마다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그 요소들은 한데 모아놓은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가도, 조금 뒤에는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죽은 덕분에 그는 지금껏 겪은 일들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한때는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버렸다. -p.26
그들은 이런 아침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초여름 뉴욕의 아침을 더욱 사랑한다. 그런 아침이면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은 풀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을 생각을 하고, 경찰관은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다가 공기가 뜨겁고 시큼해지기 전에 바깥바람을 쐬러 나온 사탕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라고 해봐야 수영이나 야구를 하러 가면 좋겠다는 게 전부지만, 사실 도시의 길모퉁이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103,104
“삶은 두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 청설모가 말했다. “바로 목적과 시(詩)지. 첫 번째 요소는 우리가 청설모와 까마귀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족시킬 수 있어. 너는 하늘을 날고, 나는 나무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말이야. 그렇지만 시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만 해. 아무리 비천한 삶이라도 그 안에는 그 나름의 시가 존재하는데, 그걸 찾아내지 못하면 자아를 실현할 수 없거든. 음식이 없는 삶, 보금자리가 없는 삶, 사랑이 없는 삶, 빗속의 삶, 그런 건 시가 없는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 p.128
“사랑은 결국 자신의 필요를 시로 쓰는 거예요.” - p.304
공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영묘 안이 무척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리벡 씨의 마음속도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 좁은 공간 안에 오래된 것들이 언뜻 보면 깔끔하지만 사실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상태. - p.369,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