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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평점 :
빨간 날 5월 5일, 12월 25일. 어린이가 아닌 이,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의 별도 반짝거리는 이날. 모두 저마다 가슴 한 켠, 간직하고 있었던 희망과 의지에 불빛을 점화시킨다. 내가 바로 어린이라며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어린이날'이 누구에 의해 생겨났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집에 있던 한 테이프를 통해 5월 5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재생버튼▶만 누르면 엄마가 사주신
<꼬맹이 위인방> 테이프에선 그날에 대한 이야기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해선 들어보질 못 했다.
당연히 서양에서 건너왔으니 위인방에서야 접할 수 없었겠지만 생각해보면 그 외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분명한 출처는 알 수 없었다. 명성황후의
호기심을 끌었다던 크리스마스. 이 시즌만 되면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면서 정작 그날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성당을 다니면서 알게 됐지만.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으며 점차 우리의
문화로 재형성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사실들에 대해 눈여겨보게 된다. 형형색색 수놓은 불빛 대신 연등으로 장식했던 배재학당 앞 조선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시작으로, 점차 본래 의미가 변질되기도 했지만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다는 기쁨은 외면할 수 없는 감성을 만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결혼식에서 신부를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하얀 드레스의 근원, 백의민족였던 우리가 개성을 추구하는 스타일쟁이가
되기까지 문화의 정착 시기를 어림짐작이 아닌 사실로써 확인할 수 있다. 책 속의 참고자료와 그날의 기록들신문기사이 생생히 말해준다.
근대의 모습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었다.「욕망의 늪에 빠진 근대」,「놀이의 이중성」,「신풍속의 탄생」에는 패션, 화장에 눈을 뜨게 된 미의 풍조와, 성병에 대한
이야기 (파우더, 팩트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이 화장품들의 뿌리는 박가분이라고- 실은 옷을 구입해가는 분들에게
서비스로 챙겨주었던 수제 화장품이었다고 한다. / 성병에 감염된 이들을 육체적 통증보다 더 아프게 했던 건 사회적 차별과 배제, 그리고 병명에
덧씌워지는 낙인이었다고 한다.) 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부작용, 아픔의 일면을 싣고 있다. 놀이와 장난감에 얽힌 사연은
자연과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의 모습 외엔 현재와 크게 다를 건 없다. 교육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와 부모들의 고충도 지금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실생활에서 좇고자하는 가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연들은 예사롭지 않다. 당연하게 여기던 우리의
생활상은 시간과 여러 의식이 만나 형성되었는데, 받아들이거나 배제하기도 한 시도로 오늘날이 존재할 수 있었기에 그 시대의 사연들은 평범하지
않다. 아니 똑같은 풍경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사연은 어느 누구에게 결코 평범할 수 없다 해야 하나?
그(류두찬)는 이런 고민의 하나로 민족 고유의 색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중국옷이 청람색, 일본옷이 화문패턴으로 특징지어 진다면, 우리 옷 고유의 특색은 무엇일까 물음을 던진 것이다. 그 답으로 흰색 외에도 홍색과 녹색이 있으며, 색에 대한 취미는 시대와 정서에 따라 변하므로 흰색만 아니면 무슨 색이든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의 흰 옷 사랑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흰 옷을 예복으로 정해 명절이나 제삿날에 입게 하자고 제안한다. 「패션 2030, 근대 조선의 의생활」p.19
아직도 염집부인들은 구식 그대로의 화장법을 쓴다. (…) 크림 대신에 꿀을 발느고 덩어리 납으로 만든분을 회벽하듯 발넛다 캄캄한밤에 만나면 독개비로 속으리만큼 기독하게 분을 발느고는 인印을 물에 풀어서 연지로 썻다 - 『신동아』,1932년 11월 1일, 169~170쪽 위의 글은 당시 유행하던 화장법을 설명한 일부분이다. 납으로 만든 분을 회벽 바르듯 두껍게 바른 얼굴은 마치 도깨비와 같다고 설명한다. 납분을 바르는 것을 전혀 거리끼지 않고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아주 두껍게 발랐던 것을 보니, 납 성분이 든 화장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막 근대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조선 땅에는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근데, 아름다움의 독을 바르다」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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