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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구한 개 - 버림받은 그레이하운드가 나를 구하다
스티븐 D. 울프.리넷 파드와 지음, 이혁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 집 꼬맹이(반려견), 단지를 키우고 있으면서도 반려동물에 대한 책은 스스로 찾아 읽지 않는다. 에세이라면 더더욱. 평소 에세이 형식을 좋아하고, 잘 읽는 편인데도 굳이 관심이라 표현하자면 반려동물을 주제로 다룬 책은 무색하리만큼 가볍고 감흥없이 훑고 지나쳐버린 눈길뿐이었다. <다이고로야 고마워>만은 예외로 두고싶다 - 사실 <다이고로야 고마워>만큼 감동과 진실이 느껴지고, 꾸밈없는 기록의 에세이를 이후엔 접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 단지에게 신뢰의 언어로 쉽게 전달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언어가 다른 우리가 '가족,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단지가 나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규율을 따라주고, 내가 너를 아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내가 단지와의 첫 인연을 기억하는 그 날로부터 서툰 보호자로 입성(?)해 늘 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던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동물에 대한 정보들은 인터넷이나 따로 정리된 책자들에 의존할 뿐이었지 300쪽이 가까이 되는 책을 통해 감동을 찾아 읽어야 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보니 '구하다'라는 것에 없던 필요성을 끄집어 냈는지도 모른다. 실화라는 궁금함보다는 '두 영혼이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에 내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책의 지은이는 한때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의도치 않게 직업, 직장을 내려놓게 되었고 화려했던 과거에 둘러싸여 현재를 인정하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이란 망망대해 속에서 헤매는 삶을 살아간다. 지은이는 직장도 잃고 싶지 않았고, 본인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 다루었던 시 속에 '그', 멋진 '아빠'라는 존재를 깨부수고 싶지 않았고, 아내에게 경제력으로 부담시키는 남편이 되고 싶지 않았고, 집 근처로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조차 못하는.. 신체적으로 나약해져 가는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열여섯에 퇴행성 척추증 진단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수술로 완치된 줄 알았으나 성인이 되어 농구를 하던 중 넘어지게 되면서 병원에 실려간다. 후에 퇴행성 디스크에다 뼈가 튀어나왔고 협착증까지 있는 몸의 상태로(수술이 잘 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마흔셋의 예기치 못한 불구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지은이의 삶은 한 마리의 개를 통해 다시금 변화가 생긴다.
감동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감동을 쥐어짜거나 있던 이야기를 과장되도록 에피소드를 강조하는 류의 이야기는 오히려 감동 이전에 신뢰에 거리를 느끼게 된다. <늑대를 구한 개>는 감동을 유도하거나 과장하지 않아 차분한 감정으로 읽을 수 있다. 기복없이 차분함으로 읽어가는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하여 감동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감동인지, 공감인지 그에 대해서 선 그을 수 없더라도 확실한 건 책을 덮은 후, 내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구하다'는 단어를 보며 오르내리는 감동을 찾고 있지는 않았는지 내 안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조견이 된 경주견, 반려견에 초점을 맞추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풀어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만 반복하다 하나의 part 가 정말 아쉽게 지나가버린 것 같기도 했고, 그 아쉬운 내용이 지은이의 허리 통증이나 개인사에만 치중되어 '개'는 어디로 달아나버렸지? 하는 '개 찾기'에 집중하기도 하면서 착각을 키워갔는지도 모른다.
TV '인간극장'을 보고나면 그들의 일상, 내 이웃같은 사람들의 소박함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시청하는 데 기쁨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읽는 내내 왜 나는 아쉬움 타령만 하는 것에 감성을 소비했을까. 이것이 솔직한 리뷰이다.
내가 단지와 함께하고 있는 시간 안에서 단지의 눈빛과 입 모양, 꼬리의 장단, 깡깡대는 소리, 발짓 등만 보더라도 충분히 감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감동을 전해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탓으로 돌리고 싶다. 나의 자세도 고쳐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보다 애정만 있는 눈길 말고, 주의있는 시선과 유연성 있는 사고로 반려견들을 대해야겠다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단 생각이 앞선다.
함께 소통할 수 있고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반려견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 그 일깨움의 과정이 담백하게 녹아들어 있기에 여운이 남았던 책이라 기록해두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주견을 보조견으로 길들이는 과정 중에, 반려견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눈높이식 언어로 말하고자 했던 지은이의 소통방식과 자세를 잊지 말아야겠다.